지인의 고민, 어디까지 들어줘야 할까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조용하고, 우아하고, 삶을 예쁘게 누리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그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눈빛은 여전히 그녀였지만, 말투와 표정 속에는 어딘가 모르게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녀의 남편이 사업을 해서 아주 잘 나가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사업이 많이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다. 아마도 지금 그녀의 모습에서 모든 걸 말해주는 듯했다.
그녀는 너무 많이 변했다. 사람은 왜 변할까. 관계 때문일까, 아니면 삶의 환경 때문일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살아온 세월만큼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삶이 던지는 무게 때문인지 사람이 달라졌다. 누구나 고운 얼굴로, 고운 마음으로 나이 들어가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늘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생활의 기반이 흔들리고, 먹고사는 문제가 무너지면 삶의 본질이 흔들린다. 그녀의 흔들림은 눈빛에도 나타나고 옷차림에도 스며있고 말속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때 그녀와 모임의 일원으로 만남을 하던 시기가 있었고 최근 몇 년은 그녀가 모임에서 빠지면서 뜸했던 사이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그녀는 부쩍 전보다 말이 많아지고 수다스러워졌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변할 수 있을까. 그녀의 말속에는 기쁨이나 설렘은 더 이상 없다. 반복되는 불만과 원망, 그리고 표정 없는 얼굴과 어딘지 모를 공허함만이 맴돈다. 나는 그저 그녀의 말을 들어주었다. 때로는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될 때도 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짙은 우려가 있다. 쉼 없이 쏟아내는 말속애는 그녀의 마음이 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마음 깊은 것에서 오는 우울감, 불안, 초조가 깊숙이 들어 있다. 병원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는 자리를 정리하려는데, 그녀가 조심스럽게 돈 이야기를 꺼냈다. 그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갑을 열어서 작은 도움이지만,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그것보다 더 큰 도움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그 어려운 이야기에 나도 당황을 했다. 애써 놀라지 않은 척 마음을 다스렸다. 아는 사람의 도리는 어디까지일까. 도움의 손길은 또 어디까지일까.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고민을 온전히 대신해 줄 수는 없다. 다만 함께 들어주고, 함께 고민을 나누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너무 오래 지속되면 곁에 있는 사람도 지칠 수 있다. 도움이라는 것은 늘 따뜻한 마음과 냉정한 판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뒷모습이 오래도록 눈에 남았다. 달라진 모습이 안쓰럽고도 아팠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게 내려앉는다. 어떤 이는 고요히 받아내며 빛을 발하고, 어떤 이는 짓눌려 변해버린다. 인간은 두 가지 길 위를 번갈아 걷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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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그녀에게 묵직한 전화가 몇 번 더 왔다. 하지만 알고 지내온 세월의 무게만큼 지인의 고민에 함께해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알고 지낸 시간의 해석이 너무 어렵다. 그녀가 다시 예전의 고요한 웃음을 되찾기를 바란다. 세상의 무게에 짓눌리더라도, 마음만은 조금 가볍게 걸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