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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는 불편이 따른다

한 순간에 세상은 멈출 수 있다

by 현월안




한순간이다
수십 년 쌓아 올린 전산망의 숲,
편리라는 이름으로
하루를 지탱하던 거대한 심장이
연기 속에서 숨을 고른다


우체국의 창구는 닫히고
택배의 길은 막히고

국가 주요 시설이 멈추고
은행의 창은 얼어붙는다
손끝 하나로 열리던 세상은
순식간에 문을 내리고,
허공을 맴돌 뿐
다시 기다림을 배운다


불빛 하나 꺼졌을 뿐인데

알게 된다
그 불빛은
질서와 신뢰, 서로의 일상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던 그물망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였음을
불편 속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기술은

더 가깝고, 더 편리하지만

또 더 연약하게 만든다
언제라도 꺼질 수 있는 불빛 앞에서
다시 묻는다


편리의 끝은 무엇인가,
안전의 질서는 또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고

절망이 지배하지는 않는다

불편 속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길이 막힌 자리에서 나누는 안부,
작은 인간다움이
꺼진 불빛을 대신해 어둠을 밝힌다


세상은 한순간에 멈출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멈추지 않는다
기술 너머에 있는 그 따뜻한 손길이
또,

반드시,

그 꺼진 불빛을 밝혀내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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