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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을 읽고

혐오와 애정은 한뿌리에서 자란다

by 현월안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늘은 경계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지키는 울타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그 미묘한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비춘다. 낯선 타인과의 만남, 사회적 지위와 자본의 차이, 세대와 문화가 만들어내는 틈, 그리고 예술과 삶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섬세하게 다룬다. 소설 속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초라하며, 어떤 순간에는 보통 사람이 거울을 보듯 닮아 있다.



소설은 프랑스의 사회학적 실험에서 출발한다.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쾌감을 주었던 뱀과 양배추로 설정해 두었다. 그 기묘한 피사체처럼, 사람은 누구에게는 사랑스러운 존재이자 또 다른 누구에게는 불편한 존재가 된다. 재아는 남편의 세상 속에서 은근한 열등감을 느끼고, 여행지에서 배낭여행자들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한다. 그녀가 바라보는 풍경은 결국 자기 내면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세상을 동경하는가 라는 문제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묻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



'신시어리 유어스'는 세대와 자본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관계를 다룬다. 단은 선망과 질투 사이에서 흔들리며, 선배와 친구의 관계 변화 앞에서 자신이 포함되지 못하는 유대감을 바라본다. 타인의 성공은 늘 결핍을 드러내고, 타인의 여유는 불안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 또한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일 것이다.



열대의 뜨거운 풍경을 지나면, 작가는 돈과 가치라는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빙점을 만지다'는 문학을 꿈꾸던 청춘이 현실과 타협하며, 순수와 타락 사이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다시 정립한다. '직사각형의 찬미'는 창문 너머의 삶을 동경하며 질투하는 여인의 시선을 통해, 인간 사이에 흐르는 복잡한 감정을 보여준다. 질투와 동경, 혐오와 애정은 한 뿌리에서 자란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마지막에 다다르면, 작가의 시선은 한층 따뜻해진다.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 '바우어의 정원'은 서로의 차이를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존중해야 할 고유한 무늬로 바라본다. 예술가로서의 길도, 배우로서의 상처도, 각자가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늬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누구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차이 속에서 오히려 더 아름다워진다.



서로에게 낯선 존재일 수밖에 없지만, 그 낯섦 속에서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사람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불편하고, 동시에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 인간의 삶이 가진 모순과 긴장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순을 껴안고, 그 긴장 속에서 생겨나는 빛을 보여준다. 살아내는 일이 어렵지만, 그 어려움 속에 담긴 아름다움이 있다. 각자의 지문처럼 유일한 무늬를 지닌 각기 다른 존재를, 작가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소설을 덮고 나면,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풍경 속에 서 있는가. 나의 세상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존재일까. 그 질문들 속에서 조금 더 넓어진 마음으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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