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고치고 다듬고
글을 쓰는 일은 어렵다. 무엇보다 고치고 다듬고 퇴고가 더 어렵다는 말에 공감한다. 초고를 적어 내려가는 순간은 신나고 자유롭다. 마음속에 흘러넘치는 생각을 자판에 자유롭게 쓰면 된다. 비록 엉성하고 거칠더라도, 그 자체로 생생하다. 그런데 다듬기에 들어가는 퇴고는 고민이 많아진다. 어떤 표현이 더 정확 한가부터 이 표현은 글의 결을 무너뜨리지는 않을까를 끝없이 되묻는 과정이다. 컴퓨터 화면에 적힌 문장을 한 글자씩 바꾸어 보고, 다시 되돌려 보며, 사소한 리듬 하나에 가슴 졸이게 되고 퇴고는 길고 긴 사색이다.
써 놓은 글은 계속해서 다듬고 보완을 해도 늘 미완이다. 마감이 없다면 원고에 매달려 허우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글은 언제나 미완의 조각품처럼 남아 있다. 불완전함 속에서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마치 돌 속에서 서서히 형태를 드러내는 조각상처럼 말이다.
'퇴고'라는 말이 당나라 시인 '가도'의 일화에서 시작된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시 한 구절 속 '문을 두드린다'와 '문을 민다' 사이에서 오랫동안 고민했을 것이다. 작은 차이가 전체의 울림을 바꾸는 법이다. 그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퇴고란 신중함을 배우는 인내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차이 하나에도 표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말과 달리 글은 언제나 나를 기다려준다. 잘못 꺼낸 말은 되돌릴 수 없지만, 글은 지울 수 있고 다시 쓸 수 있다. 어제의 미숙한 문장은 오늘의 생각으로 고쳐 쓸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 간다. 퇴고는 글을 다듬는 일이면서 또 나 자신을 다듬는 일이다. 언어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기에, 그 언어를 고치고 정돈하는 일은 삶을 성찰하는 일이 된다.
글을 쓰면서 신경이 좀 더 쓰이는 것은 네가 쓴 문장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이 단어가 지금의 온도를 해치지는 않을까. 글쓰기는 늘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일과 닮아 있다. 잘 달랜 문장은 마치 온기를 품은 손길처럼 읽는 이의 가슴에 닿는다. 글쓰기는 문장을 다듬는 일이고 마음을 다듬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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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 삶을 퇴고하며 살아가는 이들인지도 모른다. 서툴렀던 어제를 고쳐 오늘을 쓰고, 또 내일의 문장을 준비한다. 삶은 초고가 아니라, 끊임없이 고쳐 쓰이는 원고다. 완벽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조금 더 따뜻한 문장,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하루를 다시 써 내려가는 일. 그것이 퇴고가 내게 가르쳐 준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