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깊은 맛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참 고급스럽다. 무엇보다 표현의 다양성이다. 그리고 한글에 한자가 더해지면 그 표현이 더 깊이가 있다. 세종대왕은 왕자 시절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병중에도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고 하고, 그의 학문 사랑은 삶의 중심이었다. 왕이 된 후에도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경연을 무려 2천 번 가까이 열었다. 유교 경전과 역사서, 철학서, 성리학 등 모든 지식의 바다를 넘나들며 사유의 깊이를 넓혔다. 그 깊은 독서의 뿌리에서 한글이 태어났다.
많은 이들은 세종을 창조의 왕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는 '재창조의 왕'이었다. 한글은 세계에서도 드물게 잘 만들어진 것이고 표현이 풍부한 언어다. 오랜 고전의 지혜 위에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문명이다. 음양오행의 원리와 천지인의 조화, 한자의 조형미가 모두 그 안에 녹아 있다. 세종은 전통의 힘을 빌려 미래를 만들었다. 그 균형감이야말로 진실한 창조다.
한글이 제대로 꽃 피울 수 있도록, 그 뿌리를 더 깊게 다져준 사람은 주시경이었다. 모두가 쓰는 띄어쓰기와 맞춤법, 문장 구조는 그의 손끝에서 다듬어졌다. 그는 영어를 배우면서도, 한문 고전을 익히며 글자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주시경의 제자 최현배 역시 '한글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외치면서도, 한자와 고전의 지식을 놓지 않았다. 한글과 한자는 서로의 그림자처럼 공존하는 존재다.
말의 의미를 더욱 절실히 느꼈던 것은. 논술을 지도하면서 말과 글의 어휘의 깊이가 부족한 학생들을 보면, 깊이가 없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가를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한자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오래전에 한자급수 1급을 땄다. 처음엔 단순히 논술 교육에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새 그 안에서 언어의 철학을 발견했다.
글과 말은 사람의 정신이 담긴 숨결이다.
한자 1급을 따고 보았더니 논어가 달리 보였다. 단어가 주는 느낌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자의 말이 단순한 격언이 아닌, 살아 있는 지혜로 다가왔다. 나의 언어의 저변이 한층 고급스러워졌고, 글을 쓰는 문장 속 단어들이 보다 정교하고 고급스럽게 바뀌었다는 것이 다름이고 놀라운 성과다.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한글은 모두의 자부심이지만, 그 뿌리를 아는 사람만이 그 자부심의 진짜 무게를 안다고. 한글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라는 뿌리를 함께 알아야 한다. 한자는 언어의 근육이자 생각의 골격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한자를 배우는 것은 글의. 깊이를 알게 되는 좋은 습관이다. 그것은 언어의 세상을 넓히는 일이고,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일이다. 한글이 마음의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라면, 한자는 그 마음의 구조를 세워주는 언어다.
세종이 한문을 읽으며 한글을 창제했듯, 모두 고전을 익히며 한글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글자는 단순히 소리를 옮기는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그 눈을 밝히는 길 위에 한글과 한자가 나란히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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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언제나 인간을 따뜻하게 만든다.
세종이 책을 품고 잠들었듯이, 주시경이 밤새 글자를 다듬었듯이 한글 속에는 세종의 숨결이 있고, 주시경의 땀이 들어있다. 한글을 더 고급스럽게 이해하려면 풍부한 표현의 한글과 한자의 깊은 뜻을 적절히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