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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가는 일

글쓰기는 나를 사랑하는 일

by 현월안




글을 한 편 쓰려고 컴퓨터를 켜면 나는 이미 어떤 다른 세상으로 날고 있음을 느낀다. 글을 쓰기 전의 나와, 글을 쓰고 난 뒤의 나는 같은 사람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 모두가 글쓰기가 일으키는 변화다. 글쓰기는 내가 나와 만나고, 내가 내 안쪽으로 향하는 길이다.



늘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그 믿음은 천천히 풀려나간다. 쓰는 동안 마주치는 것들은 내가 평소에 부정하거나 억눌러온 나, 아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나, 때로는 내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것들의 그림자다. 왜 글을 쓰는가, 어떤 글을 쓸 때 채워지는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늘어난다. 흥미로운 건, 답을 찾겠다고 더 깊이 들어갈수록 질문의 수가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글쓰기의 과정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놓지 않는다. 생각의 저변에 어떤 허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허기는 또 다른 열망과 닿아 있다. 글쓰기는 그 열망의 우물 속으로 로프를 내려보내는 일이다. 내려가는 동안 만나는 감정들과 사소한 느낌과 오래된 수치심, 은근한 기쁨, 말로 하기 어려운 것들을 만난다.



발견은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다. 부끄럽고 못난 것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결점들, 그런 것들을 마주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글쓰기는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이기도 하다. 나와 불화하면서도 나를 수용하고, 발가벗은 나와 조우하는 것을 가르친다. 그럴 때 때로는 진심으로 불완전한 나를 끌어안는다.



사람들은 글을 통해 바깥으로 나간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달아나는 척하면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문장을 배설하듯 흘려보내면서도, 그 진실 속으로 더 진하게 말려 들어간다. 글은 나를 세상에 던지는 방식이고, 세상과의 관계를 적절히 재편성하게 된다.



글을 쓰는 일은 마음을 내주는 일이다. 관심이 없는 것에 관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보상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일임에도 시간을 쏟는 일이다. 그 대상에게 마음을 준다는 말이다. 그리고 옆에서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마중물 한 컵, 토닥임 한 번, 읽을 기회를 주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마중물과 토닥임은 물길을 트는 데 중요한 것이다.



글을 쓰면서 종종 내가 생각하던 것이 더 정교해지거나, 애초에 내가 말하려던 것이 다른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글은 속이지 않는다 오히려 쓰는 일 자체가 사고의 빛을 밝혀 예상치 못한 지점들을 드러낸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를 알고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일임을 알게 된다. 내가 왜 이 주제를 택했는지, 어떤 표현을 넣어야 할까. 어떤 형식이 내 이야기를 공손하게 드러낼까. 이런 질문들 사이에서 서서히 자신을 알아간다. 숨 쉬는 미세한 감각까지 알아채는 일, 그것이 글쓰기의 은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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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아마도 가장 복잡하고 끈적한 애정이다. 글쓰기는 나를 다그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부끄러워 숨기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부끄러움조차 사랑하게 되는 길을 열어준다. 글 한 편을 끝내면, 나는 또 다른 차례로 천천히 넘어간다. 그다음은 만남이다. 지면은 나를 묻고, 거기에서 다시 일어나 다른 모습이 된다. 매번 쓰는 일이 다시 나를 만나는 일이 된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삶은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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