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결혼은 더 이상 필수 과정이 아니다
독서토론 크루에서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왕언니가 있다. 그녀는 요즘 수심이 깊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아들 둘이 아직 홀로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끝마다 "우리 애들은 결혼할 생각을 안 해요" 라며 웃어보지만, 그 웃음 뒤엔 길게 눌러둔 한숨이 깃들어 있다.
결혼은 한때 삶의 완성으로 여겨졌다.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그 속에서 사랑과 책임을 배우며,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준 세상의 질서를 이어가는 일이었다. 그 질서 속에서 부모는 자식의 결혼을 통해 자신의 삶이 다했다는 안도감을 얻곤 했다. 자식의 혼례는 부모 세대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 결혼은 더 이상 인생의 필수 과정이 아닌 듯하다. 경제가 불안하고 주거의 부담이 있고 일과 관계의 불확실성 속에서 결혼은 신중한 선택이 되어간다. 더 이상 누군가의 아내나 누군가의 남편으로 자신을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모의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자식이 결혼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그녀는 자주 자신을 탓한다. 그 안에는 사회의 시선보다 더 깊은 사랑의 근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녀의 근심은 아마도 아들이 외로울까, 늙어서는 누가 곁을 지켜줄까, 그 마음은 현실적 염려와 걱정이 뒤섞인 온기다. 한 세대를 살아낸 엄마는 안다. 사람은 누군가의 곁에 머물며 살아야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닐까.
요즘의 젊은 세대는 다르다. 그들은 더 이상 의무로서의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사랑이 진실할 때,
그리고 삶이 함께할 수 있을 때만 결혼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자유를 지키기 위해
결혼을 유예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그 선택은 부모 세대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세대는 많이 엇갈린다. 부모는 책임을 말하고, 자식은 자유를 말하는 듯하다. 부모는 사랑을 함께 사는 일이라 믿고, 자식은 사랑을 서로의 자유를 지켜주는 일이라 여긴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지만, 그 다름 속에 삶의 깊은 변화의 흐름이 담겨 있다.
결혼하지 않은 자녀를 둔 부모의 근심을 결핍이나 또 실패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속에는 시대가 변하는 취향과, 사랑의 방식이 바뀌어가는 모습이 들어 있다.
그녀의 고민에는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철학적 고백이기도 하다.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할까?"
물음 앞에서, 모두 잠시 멈추어 서게 된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함께 있음을 꿈꾼다. 혼자 살아도, 가족과 떨어져 있어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염려하고 기억하는 순간, 사람은 이미 관계 속에 살고 있다. 사랑은 일상 속의 작은 다정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염려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조금은 다른 빛으로 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믿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형태 말이다.
그녀가 아들에게 바라는 건 행복하지 않은 결혼이 아니라, 그저 따뜻한 삶일 것이다. 그 삶의 방식이 결혼이든, 독립된 자유이든,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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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시대마다 의미를 달리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흐른다. 결혼하지 않은 아들을 향한 그녀의 고민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 사랑이 세대의 다름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는 연결이 될 때, 진심으로 가족의 의미를 되찾게 된다. 가족은
결혼이라는 제도보다 앞서 존재하는, 서로를 향한 변함없는 마음의 이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