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마다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
가을이 되면 말끝마다 "가을을 탄다"라고 말하는 여인이 또 하소연을 한다. "가을이 너무 예뻐요" , "외로워요~" 그녀는 계절에 유난히 민감하다. 낙엽이 가지에서 떨어질 때, 남은 가지가 바람에 떨듯이 그녀의 마음도 바람 한 줄기에 흔들린다.
봄에는 설렘으로 피어나지만, 가을이 오면 피었던 꽃잎 대신 바스러진 기억들이 무릎 위에 쌓인다. 그녀의 눈빛에는 늘 그리움이 머문다. 햇살에 반짝이는 먼지를 보며, 문득 오래전 누군가의 웃음을 떠올리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설명되지 않는 서늘함을 느낀다.
사람은 본래 외로운 존재다. 그렇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찾고, 말을 건네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려 애쓴다. 그녀의 외로움은 조금 다르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외로움을 온몸으로 확인하려는 사람 같다. 가을이 되면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걸고,
'요즘 왜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어요'라며 외로움이 자기 안의 공기를 채우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외로움은,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말로 덜어내는 감정이 아니라, 조용히 마주해야 하는 내면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가을은 그림자를 선명히 드러내는 계절이다. 빛이 낮아지고, 그림자가 길어진다. 하루가 저물어 갈수록 물체의 윤곽은 더욱 뚜렷해지고, 그 속에서 사람은 자신 안의 빈 공간을 발견한다. 그녀가 느끼는 외로움은 단지 사람을 그리워해서가 아니라, 완전하게 채울 수 없는 인간 본래의 외로움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지만, 모든 관계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홀로 서야만 하는 존재다. 그녀는 그 걸 두려워한다.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고요를 불안해한다. 진짜 외로움은 그 고요함을 통과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더 깊은 휴식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나무는 잎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지킨다.
외로움도 결핍이 아니라 내면의 읽어내는 것이다. 비워냄 속에서 자신을 다시 세우는 것이고, 그것이 가을이 건네는 지혜다.
가을은 시간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계절이다. 모든 것이 물러가고, 사라지고, 비워질 때 남는 것은 본래 모습이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불안을 느끼지만,
사실 그 불안 속에는 새로운 기운이 숨어 있다.
잃는다는 것은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
외로움은 인간이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이고 서로를 찾게 만드는 힘이다. 누군가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따뜻한 목소리에 위로받는 이유도 거기 있다. 외로움이 없다면 관계를 맺을 이유조차 없을 것이다. 외로움은 인간을 연결시키는 가장 깊은 기본이다.
가을을 타는 여인은 사실, 자신 안의 결핍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람이다. 그 감정은 약함이 아니다.
삶의 흐름이고 존재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그녀는 가을을 느끼는 것이고 가을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인간이 외로워지는 이유는
변화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사라져 가는 온기와 다가오는 냉기 사이에서 가슴속 무언가가 덜컥 내려앉는다. 그러나 그 불안의 틈새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외로움은 나를 아는 감정이다.
가을은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가를 묻는다.
그녀의 외로움은 그 물음에 대한 본능적으로 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말로, 관계로 채워지지 않는 그 어떤 공간,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다. 그녀는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가을은 조금 더 길고, 조금 더 깊다.
낙엽이 모두 떨어진 뒤에도, 그녀는 나무의 침묵을 듣는다. 그 고요함 속에서 자신을 찾는다.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순수한 감각이다. 세상이 떠들썩할수록, 마음의 온도가 낮아질수록 그 감각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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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견디는 마음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다. 스스로의 빈자리를 인정하고, 그 공간에 침묵을 들이는 용기다. 그녀가 느끼는 외로움이 깊어질수록, 그녀의 삶은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가을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고 모든 것이 떨어지고 난 자리에 가장 맑은 본모습이 남는다.
그 본모습이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