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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에 오르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알게 되는 것들

by 현월안




남편과 함께 북한산에 올랐다. 오늘의 오름은 마음을 비워내는 성찰의 시간이다. 백운대 정상은 어떤 표정으로, 어떤 차림새로 맞이할까 하는 설렘이 있다. 숲과 바람과 나뭇잎과 흙냄새에 스며들어 차츰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크고 작은 잎들이 가볍게 흔들리며 반가운 손짓을 해주고, 숲 사이를 가르며 날아다니는 새소리는 축복처럼 내 귀에 스며든다.



산허리쯤에서 남편과 나는 잠시 쉬어가는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른다. 땀을 닦아내고 꽁꽁 얼려 온 시원한 물을 나눠 마시고는 심호흡을 한다. 잠시 쉬었으니 또 출발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칠게 들숨날숨을 내뱉는다. 호흡이 발아래로 흩어져 내려가는 순간, 묘한 깨달음이 찾아온다. 무엇을 위해 나는 이렇게 오르고 있는가. 왜 굳이 이토록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물음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복한산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넉넉히 나를 품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산의 대답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정상 백운대에 이르렀다.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다. 세상 속에서 지치고 때 묻은 나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준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산과 도시의 경계는 마치 삶의 무게와 자유의 경계 같다. 정상까지 올라오기 위해 짊어지고 온 마음의 짐들을 풀어헤쳐 내려놓으라는 듯, 산은 너그럽게 나를 허락한다. 무언의 물음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천천히 가슴속 짐을 풀어놓는다.



멀리 겹겹이 쌓인 북한산은 마치 오래된 소리처럼 각자의 호흡소리를 내고 있다. 크고 낮게, 또 작고 잔잔하게, 숲과 풀과 꽃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며 화음을 이루고 있다. 그 모습은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다. 그 안에는 생명이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터전 속에서 절실하게 지켜내는 조화와 여백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다. 순간 날개가 있다면, 저 산맥과 숲 사이를 헤매며 자유롭게 노닐 수 있을까.



문득,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이 산을 오르는 일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알게 된다. 어릴 때는 부모의 품에서 아무 근심 없이 자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힘으로 가야 할 길이 놓인다. 그 길에는 수많은 관문이 기다리고 있고, 피할 수 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숨이 차고, 주저앉고 싶고, 때로는 돌아가고 싶어도 결국은 스스로 발을 내디뎌야만 한다. 산이 그렇듯, 삶 또한 나를 대신해 줄 이는 없다. 모든 삶은 위기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 뿐이다.



북한산을 마주하며 나의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산이 사계절의 풍경을 견뎌내며 그 자리를 지켜온 것처럼, 나 또한 고된 세월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거칠게 내뱉던 숨소리 같은 날들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것이 나를 단련시켜 주었다. 세월의 선물은 때론 거칠고 또 평온하게 다가오는 호흡의 연속이다. 이제는 삶의 굴곡조차 단단하게 빚어낸 과정임을 알기에, 지난 기억조차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정상에서 두 팔을 활짝 벌려 허공을 향해 본다. 파란 하늘이 따스한 팔로 나를 감싸는 듯하다. 남편이 곁에서 미소 지으며 내 손을 꼭 잡는다. 산이 우리를 품듯, 우리는 서로를 품고 있다. 사랑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거친 숨소리를 함께 견디며 끝내 정상에 서는 것. 서로의 숨결을 들으며, 그 숨이 점점 평온해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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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거센 숨을 몰아쉬는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평온한 하늘이 기다린다. 산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바로 그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른 북한산은 사랑과 삶의 이치를 전해준 온기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길을 걷든, 사랑으로 숨 쉬는 삶은 늘 정상에 도달한 듯 벅차고 충만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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