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있기에 지금의 숨결이 귀하다
가끔은 밤이 유난히 깊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창가에 앉아 불 꺼진 거리를 바라보다 보면 문득, 이 모든 게 언제까지일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생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어쩌면 삶을 진심으로 바라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죽음은 모두의 마지막 여정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그 길 위에 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끝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삶을 빛나게 한다. 끝이 없다면 시작도 또 소중함도, 간절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피어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생이 찬란한 이유도 그 유한함 속에서 피어나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젊을 땐 죽음이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세월이 쌓일수록, 조금씩 죽음을 배운다.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병원 복도에서, 가을 저녁 낙엽이 흩날릴 때 문득 느껴지는 쓸쓸함 속에서 말이다. 삶의 끝자락을 목격할수록 사는 일의 소중함을 조금씩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가끔 죽음이란 또 다른 생의 형태는 아닐까.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건너가는 과정 말이다. 떠난다고 하는 일은 어쩌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음은 변화를 위한 형태의 이동이다.
삶이 주어진 선물이라면, 죽음은 그 선물을 마무리 짓는 리본 같은 것이다. 리본이 있어야 선물이 완성되듯, 죽음이 있어야 인생이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로 완성된다.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 두려움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그 끝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렵고, 사랑받던 세상을 떠날까 두렵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삶이 얼마나 깊이 사랑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다른 증거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건, 지금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일은 어쩌면 더 잘 살아가기 위한 연습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누구를 용서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을 남기고, 어떤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그 질문이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든다. 죽음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어쩌면 삶을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삶이란 매일의 작고 아름다운 죽음의 반복이다. 하루가 저물고, 계절이 바뀌고, 젊음이 서서히 물러가고 모든 순간은 작은 죽음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다시 새벽을 맞고, 봄을 맞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며 또다시 태어난다. 삶은 죽음을 품고 있고, 죽음은 삶을 품고 있다.
'죽음을 배운 사람은 이미 삶의 본질을 배운 사람이다'라고 어느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그렇다면 모두 매일 조금씩 죽음을 배우며 살아가는 셈이다. 누군가의 이별을 통해, 병든 친구의 미소를 통해서 그리고 거울 속 조금씩 늙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통해.
그래서 죽음이 있기에 지금의 숨결이 귀하다. 또 오늘의 햇살이 눈부시고, 사랑이 그토록 절실한 것이다. 언젠가 나 또한 그 문을 통과하겠지만, 그때는 부디 두려움 대신 감사의 마음으로, 슬픔 대신 고요한 미소로 문턱을 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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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유한하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겨진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오늘 하루를 잘 사는 일, 그것이 바로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매일 새로이 태어나는 또 다른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