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소설
어느 여름,
소녀는 바람처럼 맡겨졌다
사랑이란 말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집에서
낯선 길을 따라,
이름 모를 친척의 집으로
그곳엔 고요와 풀 냄새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침묵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말없이 머리칼을 빗겨주고,
아저씨는 묵묵히 보폭을 맞춰 걸어준다
그의 손은 낯설었지만,
그 낯섦이 처음으로 따뜻했다
순간 소녀는 알았다
한 번도 잡히지 않았던 손이
세상을 이토록 다르게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밤이 되면
별빛은 창문을 넘어와 그녀의 잠을 덮었다
이 집의 공기는 다정했고,
시간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소녀의 안쪽 어딘가를 바꾸어놓았다
아직 어린 마음으로 어른들의 비밀을 몰랐고,
그들이 감추어둔 슬픔의 깊이도 헤아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
말 한마디 없이 전해지는 온기,
사랑이라는 것은
어쩌면 보살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소녀는 언젠가 다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돌아가야 할 집이 있고,
그곳엔 여전히 차가운 공기와
비어 있는 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안다
세상 어딘가에는,
누군가의 손길이,
누군가의 시선이,
자신을 조용히 감싸준 시간이 있었음을
그래서 삶은 어둡지 않다
짧은 여름 한 자락에,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담겨 있었으니까
그것은 돈도, 말도 아닌
단 한 번의 손길,
단 한 번의 따뜻한 숨결,
단 한 번의 있어주는 일
'클레어 키건'은
그 모든 것을 한 줌의 빛으로 압축한다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걷어내고,
남은 것은 투명한 마음의 결정(結晶)
그 결정은 읽는 이의 가슴속에서 천천히 녹아
조용한 울음을 낳는다
삶이란
누군가의 집에
잠시 맡겨진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여름의 소녀처럼,
또한 언젠가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여전히 다정한 손이 있고,
그 손이 한 번 닿는 순간,
삶은 영영 달라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