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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간다

가을엔 편지를 써 볼까

by 현월안



가을이 깊어 간다.
세상은 조금 느려지고, 바람은 생각에 여백을 남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노랫말처럼, 이유 없이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받는 사람이 없더라도, 쓰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충분한 계절. 내 안에 고요히 쌓여 있던 문장이 바람에 실려 누군가의 마음으로 흘러가길 바라는 계절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나뭇잎은 단풍으로 분주하다. 뜨겁던 여름 속에서 잠시 잊고 지냈던 내면의 쓸쓸함이 다시 고개를 든다. 하지만 그 쓸쓸함은 외로움이 아니라, 삶의 밀도를 되찾기 위한 다정한 동작이다. 가을의 쓸쓸함은 내 마음을 텅 비우는 대신, 그 안을 가만히 채워주는 감정이니까.



많이 알려진 유명 작가가 남긴 편지를 꺼내 읽는다. 책장 한편에 고이 꽂혀 있던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를, 그들의 편지는 종이 위의 대화이자, 시대를 건너온 마음의 기록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읽으며 잠시 그대가 된다. 벗이 되어, 그들의 고뇌를 듣고, 웃음에 동참하고, 침묵의 온기를 나누어 본다.



카뮈와 샤르의 편지는 짧지만 깊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인간의 품격이 깃들어 있다. 그들의 우정은 화려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서로의 고독을 존중하는 침묵의 예의다. 그들의 편지를 읽으며, 옛 기억을 떠올린다. 그들의 문장은 마치 밝은 빛 같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들어있는 문장은 언제나 마음을 따뜻하다.

편지는 또 다른 결의 우정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세상을 논하고, 예술을 해부하고, 인간을 탐구한다.



그들의 편지는 무겁고도 유쾌하며, 논리적이면서도 인간적이다. 그들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무언가를 쓰고 싶어진다. 생각이 생각을 불러내고, 그 끝에는 언제나 삶을 사랑하려는 열망이 남는다.

그래서, 편지는 그때의 진심을 담아낸다.



편지는 인간이 세상에 보내는 가장 오래된 사랑의 방식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시간과 공간을 건너게 하며, 흔적을 남긴다. 부치지 못한 편지라도 괜찮다. 편지를 쓰는 그 순간,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내어놓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두가 쓰는 모든 글, 시, 소설, 일기, 한 줄의 메모까지도, 세상을 향한 편지인지 모른다. 때론 사랑했던 계절에게, 지나간 시간에게, 혹은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다. 그 모든 편지에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말하고 싶고, 전하고 싶고, 남기고 싶다는 열망 속에서 존재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가을은 낙엽이 지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가을은 전하고 싶은 마음이 또렷해지는 계절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듯, 마음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언젠가 한 편의 편지가 된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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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여전히 차갑고 복잡하지만, 가을은 그렇게, 편지처럼 내 곁에 와 있다. 말보다 깊고, 침묵보다 따뜻한 계절의 철학으로. 그리고 편지의 힘을 믿는다. 서로에게 전해지는 힘을 믿고, 쓰는 일의 아름다움을 믿는다. 가을 한가운데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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