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그저 공기의 흐름이 부드럽다
알맞게 좋은 온기 가을바람이 순하다.
계절은 끊임없이 순환하지만, 같은 계절은 단 한 번도 없다. 봄은 언제나 새로움을 주고 여름은 넘치는 생명력으로 들판을 흔든다. 겨울은 모든 것을 덮어 고요히 쉬게 한다. 그중에 가을은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 가을은 계절의 한가운데에서, 생각과 시선을 끄는 계절이다. 난 그 중간 지점 어디에서 살짝 가을 타고 흔들린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을은 마음속 깊은 곳에 한층 더 깊이 스며든다.
가을바람은 그저 공기의 흐름이 부드럽다. 봄바람이 희망이고 여름바람이 땀을 식혀준다면, 가을바람은 기억을 불러내어 살랑거린다. 들녘을 스쳐오는 바람에선 벼 이삭이 고개 숙이고 겸손함이 묻어난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지나온 시간이 저만치 멀어져 가는 쓸쓸함이 묻어난다. 문득 가슴이 먹먹해지고, 묻어 두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번져 나온다.
좀 더 젊은 때의 가을은 겨울로 이어져서 다시 봄이 올 것을 믿었다. 푸른 싹을 기다릴 힘이 있었고, 가을바람은 잠시의 휴식으로 여겨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보니 가을바람도 조금 다르다. 내 뒤에는 이미 많은 봄이 사라졌고, 앞에는 점점 긴 시간만이 남아 있음을 알기에 바람이 차갑게 스며든다. 때로는 들뜬 설렘이 가을이었다면, 이제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을을 맞고 있고 지금 이 순간, 바람이 나를 스치며 지나간다.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계절의 감각이고 활동할 수 있기에 가을을 깊이 느낄 수 있다. 가을이 주는 아름다운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가을비가 내린다. 가을이 더 깊어지는 빗소리이다. 깊어지는 속에서 마음은 한결 겸손해진다.
가을은 보내는 계절이다. 여름을 마무리하고, 초록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가을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또 서늘함을 느낀다.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늘 아름답고도 쓸쓸한 것이다. 어쩌면 가을을 사랑하면서도 아쉬움에 눈물짓는 이유일 것이다.
계절은 계속 순환하지만, 인간의 생은 순환하지 않는다. 사람은 돌고 돌아 다시 태어나지 않듯 한 번의 흐름 속에서 점점 깎이고 닳아가는 작은 존재다. 그래서 가을은 깨달음을 주는 계절이다. 잎이 지는 것을 보며 언젠가 나의 시간도 질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순간을 더 단단히 붙잡게 된다.
가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때, 그림자 위로 흘러내리는 빛을 나는 좋아한다. 그 빛은 슬프면서도 온화하다. 그저 부드럽게 낙엽이 물드는 그 빛이 아름답다. 오늘도 조용히 가을바람을 맞으며, 내 앞에 놓인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
가을 온기가 그냥 좋다.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내 마음이 가장 크게 울리는 계절이라서 좋다. 그 울림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고, 가을을 깊이 사색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