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에 휘영청 둥근달을 고향 마을에서 보았다
긴 추석 연휴 기간에 친정 형제자매들이 고향집을 지키고 사는 동생네에 다 모였다. 길게 늘어진 연휴 덕분에 여유 있게 고향에서, 마음의 속도까지 늦출 수 있었다. 도시에서는 늘 분주한 일상 속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지만, 고향 마을에 도착하자 공기가 다르고 시간의 결이 달랐다. 바람은 느릿했고, 들녘은 이미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만 느끼의 포근함이 참 좋다. 저녁 무렵 모두 마당에 모여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밝은 보름달이 떠 있다. 모난 데 하나 없는 둥근 달덩이,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졌다.
달은 한 달 주기로 차고 기운다. 그 주기를 따라 사람의 마음도 오르락내리락한다. 늘 꽉 찬 달만 있는 게 아니듯, 삶에도 여러 모양이 있다. 추석 연휴의 달은 유난히 예쁘게 둥글다. 그 둥근 모양 속에는 흩어진 가족의 마음이 모이고, 떨어져 있던 그리움이 닿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석이면 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빛 아래서 소원을 빌고, 나와 가족의 안녕을 기원한다.
어릴 적 추석이면 마당 한가운데에 상을 차려놓고 송편을 빚었다. 엄마는 반달 모양이 예쁘다며 모서리를 살짝 눌러 매끈하게 만드셨고, 아버지는 그 옆에서 불을 피우며 밤을 구우셨다. 송편을 찌는 냄새와 군밤이 익어가는 냄새가 섞이면, 온 마을이 따뜻해졌다. 그 시절의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달을 올려다보며 소원을 빌며 어쩜 그리도 둥근달이 예쁠까 하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흘러, 그때 보있던 유년의 기억이 나의 저변을 가꾸는데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알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샤람은 곡선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생명체의 몸과 물의 흐름과 바람의 길이 모두가 둥글고 부드럽다. 뾰족한 것보다 둥근 것이 편안하고, 각진 것보다 유연한 것이 따뜻하다. 그래서 둥근달을 보면 마음이 저절로 누그러진다. 달빛 아래서 웃는 얼굴도 그렇고 가족끼리 나누는 대화도, 모두가 조금은 더 부드러워진다. 또 완벽한 둥근 모양은 잃어버린 온전함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번 추석 연휴, 모인 친정 형제자매들과 함께 보름달을 보았다. 달을 향해 손을 흔들고 환호라며 그때 시절처럼 웃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때로는 서로의 삶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달빛은 그 거리를 메워준다. 그 빛은 말보다 따뜻하고, 마음보다 더 깊게 닿는다.
둥근달은 늘 사람 위에 떠 있지만,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아마도 가족 사랑의 표현과 둥글게 많이도 닮았다. 매일 함께 있어도 고맙다는 말을 잊고 살다가, 추석 명절즈음쯤 그 존재를 새삼 느낀다. 둥근달이 완벽한 것 같아서 아름답고, 그 속에 불완전한 마음이 비쳐서 더 따뜻한지도 모른다.
밤이 깊어가고, 고향 마을의 불빛이 하나둘 꺼질 무렵에도 달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나는 마당 끝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달이 참 크고 예쁘다는 생각과 달이 더 환하게 빛난 것은, 매년 다시 한자리에 모인 가족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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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달은 하늘의 거울이고, 가족은 마음의 거울이다. 그 둘은 닮았다. 결핍과 그리움을 품고도 매번 둥글게 빛난다. 추석 연휴의 보름달 아래서, 형제자매 서로의 마음을 비추는 빛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친정 가족을 하나로 이어주는 건, 둥근 달빛처럼 조용하고도 따뜻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