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지닌 따뜻한 정
가을은 유난히 마음을 다잡게 만든다. 봄이 시작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돌아봄의 계절이다. 낙엽이 지고 바람이 서늘해질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 묵혀둔 다짐이 문득 고개를 든다. 올해 내가 세운 다짐 가운데 하나는, 바로 대면대면 하지 않기였다. 인간다운 정을 좀 내자라는 나름의 의미다.
대면대면 하다는 것은 마치 따뜻할 수 있는 순간이 엉뚱한 곳으로 흩어져 버린다. 좀 더 인간적이지 않은 순간 앞에서 서운해한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의 무심함을 쿨하다고, 또 세련됨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차가움 뒤에 따뜻한 사연이 숨어있지만, 현실의 만남에서는 그 차가움이 종종 무책임으로 남는다.
어떤 사람은 좀 이기적이고 또 사람다움이 없고 그렇게 데면데면 시큰둥해지는 걸까. 그건 타고난 성격일 수도 있고, 선택된 태도일 수도 있다. 상대에게 마음을 활짝 열면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혹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습관이 만든 벽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데면데면한 시큰둥함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사랑을 담아 내밀기만 하면 된다.
비비언 고닉이 말했듯, 친구 관계에도 두 종류가 있다. 서로에게서 활기를 얻는 관계, 그리고 활기찬 상태여야 만날 수 있는 관계. 나는 상대의 기분이 어떤 날에도, 그 사람과 함께하면 생기가 차오르는 사람이고 싶다. 그것은 데면데면하고 시큰둥한 태도와는 양립할 수 없다.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때론 사소한 질문에도 진심 어린 눈빛을 보낼 때 비로소 서로의 활력이 된다.
사랑이란 잘 들어주고, 잘 바라봐주고, 잘 반응해 주는 일이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정말 그렇구나"하고 따뜻하게 답할 때, 그 짧은 순간에도 사랑은 자라난다. 반대로 "응"하고 무심히 흘려버리면, 그 자리에는 바람만 지나가고 텅 빈 침묵만 남는다. 침묵하고 고요한 사람보다는 내 말과 표정, 그리고 눈빛 속에서 작은 빛 하나라도 켜고 싶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이제껏 마음속에 품어두기만 했던 따뜻함을 실천해야 한다. 이 계절 가을을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 사랑한다는 말을 입술로만이 아니라 태도로 보여주는 일, 시큰둥함 대신 온기를 건네는 일, 그래서 시큰둥한 마음조차 녹여내는 사람이고 싶다.
어쩌면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시큰둥하지 않고 다가가는 데서 비롯될지 모른다. 좋은 일에는 기꺼이 웃고, 슬픈 일에는 함께 울며, 사소한 대화에도 반짝이는 눈으로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사람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큰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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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에는 먼저 시큰둥해지지 않고 정을 내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다른 이에게는 따뜻하게 다가가고, 차갑지 않고 무심하지 않고, 사랑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내 안에 늘 비워두는 것이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계절에도, 내 마음만큼은 따뜻하게 불을 지펴놓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데면데면 시큰둥하지 않은 가장 아름다운 방식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