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이 알려준 삶의 철학
고향 마을에 내려갔을 때였다. 햇살이 느긋하게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던 늦은 오후, 뒷산 산책길을 걷다가 우연히 거미 한 마리를 보았다. 낙엽 사이에 걸린 한 줄의 가느다란 빛, 처음엔 이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 작은 거미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숨죽여 바라보았다. 거미는 마치 자신이 설계한 우주의 도면이라도 그리듯, 몸을 돌리고, 뛰어올라, 공중에 실을 잇고 있었다. 한 올 한 올, 투명한 선들이 공기 속에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경이로웠다. 세상에 저토록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가가 또 있을까 싶었다.
거미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이 가야 할 자리를 알고 있었다. 그 실은 곧 먹잇감을 잡기 위한 도구이자, 자신을 지탱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어쩌면 거미에게 살아간다는 건 매일 거미줄을 치는 일, 자기 세상을 짓는 일이다.
그때 문득, 인생이란 결국 하루하루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반복의 연속이 아닐까. 아무리 정성껏 쳐놓은 줄도 바람에 찢기고, 비에 젖어 떨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거미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찢어진 줄을 삼켜 다시 실로 뽑아내고, 다음 날 또 새롭게 짓는다. 버림과 재생, 실패와 시작이 거미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것이 삶이다.
그 모습이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 사람도 살아가다 보면 마음의 줄이 끊어질 때가 있다. 믿음이 무너지고, 희망이 끊기고, 사랑이 낡아질 때가 있다. 그러나 또 그럴수록 다시 삶의 중심을 잡고, 새로이 줄을 엮어가야 한다. 그것이 살아 있는 존재의 의지이고, 생명의 철학이다.
거미줄은 햇빛을 만나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투명하던 실이 금빛으로 빛날 때, 그 안에서 한 생명의 성실함과 신비로움을 본다. 자연은 늘 그렇게 말없이 가르침을 준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힘이 있다고. 작아도 거룩한 생이 있다고.
고향의 산은 여전히 고요했고, 그 거미는 계속 줄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떠날 수가 없었다. 그 정성스러운 움직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질서,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살아가는 삶.
돌아오는 길, 내 마음에도 거미줄이 반짝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는 희망의 선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생은 어쩌면 그렇게, 오늘도 묵묵히 자기 거미줄을 짓는 일인지 모른다. 바람이 불어도, 세상이 흔들려도, 다시 줄을 이어가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자연이 알려준 빛나는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