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 살아있는 생명체의 신비
가을빛이 따사롭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금빛으로 물드는 그 시간, 감나무 가지 끝에서 까치 한 마리가 작은 부리로 붉게 익은 감을 쪼아 먹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따뜻함이 가슴에 번진다. 감나무와 까치, 둘 사이에는 오랜 약속이 있는 듯하다. 하나는 열매를 내어주고, 다른 하나는 그 씨앗을 멀리 퍼뜨려 다시 생명을 이어주는 일. 주고받음의 순환 속에서 둘은 서로 상생한다. 어쩌면 그것은 사랑의 순수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말 없는 식물이라도 번식의 욕망은 대단히 강하다. 스스로 걸을 수 없으니 바람에 몸을 맡기고, 새를 불러 그 등에 실려간다. 바람이 불면 도토리는 가지에서 튕겨 나가 멀리 떨어지고, 도깨비풀은 사람 옷자락에 달라붙어 새로운 땅을 찾아간다. 그 작은 생명들은 스스로의 생을 이어가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다. 생명은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혼자서 완성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탐스러운 열매는 아름답게 윤이 나고 고운 색으로 물드는 것은, 생명이 길을 떠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감의 단맛은 새들을 부르는 신호다. 새는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와서 열매를 먹고, 그 안의 씨를 삼킨다. 씨앗은 새의 뱃속을 지나며 단단해지고, 결국은 배설과 함께 또 다른 땅에 떨어져 새로운 생명을 틔운다.
식물은 그 대가로 단맛을 내어 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그 사랑이 다른 이에게 전해져 또 다른 사랑이 태어나는 것처럼. 사랑도 그렇게 순환한다. 나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친정 식구들과 고향에 갔다. 마을 구석구석에서 감이 익어가는 풍경을 보았다. 가을 햇살이 비치는 감나무 아래 서서, 까치가 감을 쪼아 먹는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름다운 자연의 한 장면이고, 그 안에는 살아있음의 철학과 사랑의 질서가 숨어있다. 감나무는 말없이 자신을 내어주고, 까치는 그 선물로 새로운 생명을 심는다. 주고받는 일 속에서 둘 다 풍요로워진다.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인가. 인간 세상에서도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사람은 사랑을 소유하려 한다. 하지만 자연은 소유 대신 순환을 가르친다. 감나무는 감을 가지에 꼭 붙잡지 않는다. 익으면 떨어져 내어 준다. 그제야 사랑은 완성된다. 까치가 그 감을 먹고 멀리 날아가 씨를 떨굴 때, 생명의 연결이 이어진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나를 통과해 다른 생명을 낳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깊은 은유다.
가을 한가운데서 모든 생명은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며 추위를 견딜 힘을 모으고, 땅속의 벌레들은 겨울잠을 위해 깊이 파고든다. 인간만이 때로 그 순리를 잊는다. 어쩌면 이 가을이 지나면 더 이상 이 열매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자연은 아쉬워하지 않는다. 사라짐은 다음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감나무 아래에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사랑도 그렇게 흘러가야 하지 않을까. 붙잡지 않고도, 결코 끊어지지 않는 것. 서로의 존재를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이어지는 것. 까치가 감을 먹듯,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이에게 전해주는 일. 그렇게 사랑은 생 안에서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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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이 유난히 따뜻하게 내리던 날, 진짜 사랑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통과시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가을은 그렇게, 감나무와 까치의 사랑 이야기를 바람에 실어 들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조용히 그 이야기를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