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월안 Sep 29. 2023

커피 한잔의 여유

추석 명절 차례를 지내고 커피 한잔의 여유

    

    명절 차례를  마치 나면 언제나 남편은 시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린다 

'아버지 제사 잘 지냈습니다!...' 

'어머니 언제 또 찾아뵐게요!...' 라며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드리는 것까지 해야 우리의 제사는 매번 마무리가 된다 시댁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과 신명 나게 잔칫집처럼 지내던 제사를 맏이인 우리가 서울로 가져와서 우리 식구만 지낸 지가 올해로 3년째가 된다 단출하게 변해버린 제사 두고 조상이

'제사 날~~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라고 할지도 모른다며 남편과 농담을 해가며 제사를 지낸 그래우리의 마음만큼은 충분히 다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정성 들여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어디든 통하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주어지는 역할이 있다 맏아들이라는 이름 맏며느리라는 예사롭지 않은 호칭이다 그 호칭의 대부분 많은 일가친척들이 모인 자리와, 제사를 지내면서 사람들 속에서 평가되는 호칭이 아닐까 싶다 사실 어느 때는 일이 너무 많다고 힘들고 고되다고 투정도 었다 때로는  호칭 때문에 우쭐하며 나도 모르즐기는 순간도 있었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히 부르던 이름

'형수님? 형님? 이거 어떻게 할까요?..'

여기저기서 마구마구 사랑스럽게 부르던 이름이었다 그 호칭의 대가는 힘든 것 뒤에 오는 환호였던 것,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따르는 것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그 시간이 힘듦이 눈에 보이고,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나누어 썼다는 감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때의 힘듦과 그때에 환호를 받던 카타르시스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고 기억나는 걸 보면 사람은 매 순간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의 소중한 기억 장치에, 기록해야 된다는 사실 알았다고 해야 할까


    이젠 그런 시간도 다 지나갔다 아무리 힘든 시간이 있어도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무 탈없이 잘 지나왔음에 감사할 뿐이다 이젠 고된 시간을 다 지나왔는데 새털처럼 가벼워진 제사가  그리 힘들겠는가 우리 밥상에 조금 더 맛난 음식을 추가해서 우리 식구가 맛있게 먹으면 되는 정도의 즐겁게 웃으며 지날 수 있는 과정일 뿐이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그 길을 지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



    남편이 추석 명절을 준비하느라고 수고했다며 동네 카페에서 커피 두 잔을 사가지고 왔다 고생했다고 서로에게 말을 건넸다 남편은 제사를 가져오면서 더 책임을 다하려는 듯이 더 꼼꼼하고 부드러워졌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모두 여자의 일이다 보니 무엇이든 도우려고 애를 무엇이든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며 일을 하는 것도 나이 들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비슷한 감성으로 나이 들어간다는 것과, 가장 내편인 사람이 사리를 알아준다는 것, 책임을 다하고 가족이 우선임을 안다는 것이 중요하고 고마운 일이다


    올해 추석은 햇빛이 예쁘게 따사롭다 바닐라라떼 아이스커피랑 아주 잘 어울리는 분위기다 가을이 저만치 오고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 날씨만큼 올해 추석이 주는 행복감이 크게 밀려온다 행복이란 것이 대단 것이 아닌 것처럼 소소하지만 가족에서 시작되는 안정적이고 기초적인 것에서 오는 믿음,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다 제사로 인해서 가족에게 전하지는 믿음과 사랑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반듯하시댁 어른들이 삶을 잘 녹여내어 세상을 사셨듯이, 그 삶을 통해서 사랑이 흘러서 우리에게 전해지,  진하게 녹아있는 부모님의 '사랑' 안에 많이도 감동을 했었다 그 사랑이 진짜 가치 있는 사랑이었다는 것을... 오늘 가을 햇살이 예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피한 추석 상차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