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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주는 온기

가을빛이 저문 자리에서

by 현월안




가을은 세상에 여백을 만들어주는 계절이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의 틈새마다 조용히 스며들어, 지나치게 빠르게 달리던 마음의 속도를 잠시 늦추게 한다. 오전의 햇살이 세상의 분주함을 밀어 올리는 큰 활기라면, 오후의 햇살은 그 바쁨에 지친 나에게 내려주는 다정한 위로 같다. 가을의 햇살은 차별 없이 고루 퍼지고, 모든 이가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마치 인생의 중턱에서 한숨 돌리게 하는 지혜로운 손길처럼. 그리고 그 밝음마저 저녁이면 석양의 붉은 물감으로 물들며 겸허하게 사라진다. 그 사라짐을 애달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이 다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세월, 붙잡으려 해도 가두어지지 않는 시간이기에 마침내 그 흐름에 맡기고 의미를 배워간다.



가을은 스스로 청명하다. 맑고 투명한 하늘 아래에서 시간은 잠시 머무르기라도 하듯 느리게 흐른다. 마치 조금이라도 더 오래 황홀한 색채를 보여주려는 듯, 세상은 그 어느 계절보다 고요하고 선명하다. 그 맑음 속에서 사랑이 피어나고, 또 그 사랑은 반드시 떠나간다. 사랑과 햇살의 정성으로 붉게 익은 사과처럼, 사랑의 완성은 붙잡는 데 있지 않다. 나무를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는 순간, 비로소 결실은 완전해진다. 떠남은 이별의 이름으로 찾아오지만, 그 이별은 깨달음을 안겨주는 순간이다. 수확을 마친 텅 빈 가지 위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은, 허전함을 감싸 안는 온기다.



가을의 풍경은 잠시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게 한다. 붉은 단풍잎 하나가 바람에 흩날릴 때, 잊는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배운다. 망각은 때로 지친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나무는 봄과 여름의 성장을 잊고, 그 기억을 화려한 채색으로 덮은 뒤 스스로 잎을 내려놓는다. 잊는다는 것은 새로운 순환의 시작임을 가을은 알고 있다. 가을은 활동과 멈춤을 동시에 품은 계절이다.



가을은 치장을 하고, 다시 그 치장을 지우는 계절이다. 떠날 곳이 있기에 채비하고, 마음속의 설렘을 감추지 못한 채 길을 나선다. 시간이 흐르고 인연이 떠나가면, 그 화려함은 스스로를 가리는 옷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화려한 치장을 벗어야 비로소 자신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의 혼탁함에서 벗어나 겸허함 앞에 선다. 인연이 머물든 떠나든, 그 과정 속에서 남는 것은 언제나 '나'라는 존재의 순수한 본질이다.



이름 모를 풀 한 포기, 작은 들꽃 하나도 가을의 결실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크기가 작다고, 이름이 없다고 하여 잡초라 부를 수는 없다. 그 안에도 생명의 의지가 있고, 그만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섞여 공존하는 것보다 더 고귀한 질서는 없다.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종종 잊고 산다. 같은 뿌리에서 뻗은 가지는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의 지혜고,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가을 하늘 아래에서 단순한 진리를 다시 배운다.



가을은 말없이 가르친다. 사랑하는 법, 떠나보내는 법, 그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법을. 그 교훈은 말보다 부드럽고, 침묵 속에서 더 깊게 울린다.



가을바람은 차갑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온기가 흐르고, 잎은 지지만 그 자리에 다시 땅의 숨결이 자라난다. 그것이 가을이 들려주는 삶의 방식이고, 소유하지 않고도 충만할 수 있는, 떠나보내면서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매년 이 계절 앞에서 마음을 낮춘다. 무언가를 얻기보다, 놓아주는 법을 배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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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보다, 지금 여기를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 가을은 빛이 저문 자리에 남은 온기처럼,

가을은 잔잔한 깨달음 하나를 남긴다. 삶이란, 붙잡는 것이 아니라,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고요한 순간이, 가장 찬란한 순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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