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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이 주는 잔잔한 울림

늦가을이 주는 알싸한 찬기운

by 현월안




유난히 파란 하늘이 달리는 차창 앞으로 쏟아진다. 햇살은 금빛 물결처럼 번져 들고, 길가의 은행잎은 바람에 흔들린다. 잠시 길 옆에 차를 세웠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천천히 너울거리고, 그 속으로 계절이 건너가는 소리가 들린다. 가을이 조용히 들어와 자리를 바꾸었고 이젠 그 끝자락에 머물고 있다.



해가질 무렵이면 집 앞 공원에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이젠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뿐이다. 어느새 알싸한 바람결이 차가움 마저 느껴진다. 벌써 공기 속에는 어딘가 묵직한 서늘함이 배어 있다. 문득 발끝에 바스락 거림이 전해지고, 수많은 나뭇잎이 땅 위에 내려앉아 있다. 나무 위에서 긴 시간을 견디며 푸르름을 지키던 잎이 이제는 스스로를 놓고, 흙으로 돌아간다. 떠남의 순간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을까. 그 모습이 마치 오랜 시간 자신을 태워온 생의 마지막 미소처럼 아름답다.



요즘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 뉴스 매체에서는 다들 힘들다고 보도한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처럼, 단지 시간을 통과하는 존재처럼.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을의 풍요가 잠시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바람의 결이 어느새 차갑게 스미고 사람들은 옷깃을 여민다. 모두의 계절 가을은 모든 것의 속도를 조절해 주는 계절이다. 그 여유의 틈에서 멈추어,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하루에 몇 번 의식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의 모양, 빛의 각도와 바람의 세기, 모든 것이 매일 조금씩 다르다. 그 짧은 순간은 내 하루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준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하늘을 보는 몇 초 동안은 마음의 파문이 잦아든다. 그 잠깐이 내게는 명상이고 위로이며, 또 하나의 쉼이다.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게를 조금씩 덜어낸다. 늦가을은 마음의 균형과 여유를 주는 시간이다.



그래도 늦가을의 살짝 쓸쓸함이 싫지 않다. 그 쓸쓸함 속에 삶의 온기가 숨어 있다. 가을의 쓸쓸함은 오래된 마음의 여백이다. 여름의 소란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서 비로소 보이는 고요함이다. 그 고요함 속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한다. 계절은 말없이 가르침을 준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변함 속에서도 리듬을 잃지 말라고.



계절이 주는 여유는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잠시 멈춤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지금 이 계절을 온전히 느끼는 일이다. 서두르다 보면 놓치고 사는 것이 많다. 가을 나무의 그림자도 그렇고 일상의 온기와, 가족의 사랑, 누군가의 미소.. 그리고 내 마음의 숨소리까지. 그래서 심호흡을 한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그 한 번의 숨이 내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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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감하며 따뜻하게 차 한 잔을 마신다. 김이 피어오르는 잔을 손에 감싸 쥐면, 그 온기가 손끝에서 마음으로 번진다. 따뜻한 차 향이 코끝을 스치고, 오늘의 모든 고단함이 조금은 부드럽게 녹아내린다. 또 남은 원고를 쓰고, 문장 어딘가에 늦가을 향기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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