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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줄어드는 세상

사람들은 이제 침묵을 선택했다

by 현월안




대형마트의 밝은 조명 아래,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기계 쪽으로 향한다. 계산대마다 길게 늘어서던 줄은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무인 계산대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계산원이 있는 계산대가 한산해도 이제 무인 계산대를 이용한다. 바코드를 찍고 결제한 뒤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는 속도가 오롯이 내 호흡에 맞춰지는 것이 편해서다.



그런데 계산원이 있는 계산대는 편안함이 있지만 나의 속도가 아닐 수 있다. 사람이 있는 계산대를 이용하면 계산원이 바코드를 찍는 리듬에 맞춰 내가 빠르게 장바구니에 담아야 한다. 뒤에서 기다리는 이의 시선 때문에 괜히 바빠지고,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진다. 사람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걸 좋아하지만, 계산대 앞에서는 다들 급하고 바쁘다.



요즘 음식점의 무인 주문기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조금 불친절한 직원과 마찰할 일도 없고, 주문을 잘못 받아 마음 상할 일도 없다. 화면의 버튼을 누르고 결제까지 마치면 모든 과정이 정해진 순서대로, 감정의 기복 없이 편안하게 흘러간다.



사람들은 이제 그 어떤 마찰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편리함이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말 한마디 없이도 하루가 흘러가는 시대가 되었다. 인력 부족 때문이라고 하고 또 효율성과 기술의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모든 이유가 이해가 되지만, 이러다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잠시 들른 휴게소에서도 모두 무인 시스템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전처럼 따뜻한 말투로 메뉴를 추천해 주거나, 친절하게 뜨거우니 조심하세요라고 말해주던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고 고속도로 휴게소가 점점 썰렁해져 간다.



그때는 작은 오해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고, 때때로 서로 웃음을 나누며 인간적인 호흡을 공유하기도 했다. 실랑이도 관계의 일부였고, 오가는 말속에서 사람의 온기가 전해졌었다. 기술이 만들어 준 편리함은 모두의 일상을 단단히 지탱해 주지만, 그 편리함이 인간 사이의 공간을 조금씩 점점 공허하게 만든다.



세상은 지금 말을 줄이라고 하는 것처럼 사람을 길들이는 중이다.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고,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해결되는 구조다. 감정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돌아가는 사회다. 기술은 더 발전하고 있지만, 점점 사람을 아주 조용하게 홀로 남겨놓는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관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그 끈끈한 연결 대신 효율이 우선되는 세상이다. 사람이 필요 없는 기계의 시대라는 말이 농담 같다가도 어느 순간 서늘하게 한다. 어쩌면 사람이 만든 기술의 숲에서 점점 더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기술이 사람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사람은 누군가의 말속에서 편안하고, 짧은 눈 맞춤 하나에도 마음을 주고받는다. 작은 친절을 기억하고 사소한 불편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위로받고, 사람에게서 다시 세상을 견딜 힘을 얻기 때문이다.



무인 시스템이 아무리 늘어나도, 서로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의 따뜻함이 누군가의 마음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주 깊은 곳에서 울리는 정과 함께하는 감정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의 체온을 느껴며 살아가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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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아무리 변화하고 달라져도, 세상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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