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향한 따뜻한 배려
얼마 전 가족들과 집 앞 오목공원을 걸었다. 늦가을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오후, 바람은 느리게 흘러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모처럼 온 가족이 한가롭게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삶의 분주함 속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의 숨결을 느낀다는 건 그 자체로 위로다. 그러나 그 평화로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뒤에서 '슝~' 소리 없이 스치고 간 전동 킥보드 한 대가 우리가 걷고 있는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가더니만 그 앞에서 걷던 6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를 치고 둘은 꼬꾸라졌다. 아이 엄마와 주위 사람들은 많이 놀랐고 그 아이는 피를 많이 흘리고 119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라서 다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몇 달 전 킥보드 때문에 벌어진 사고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산책 중이던 60대 부부가 뒤에서 달려오던 킥보드에 치여 부부 중 아내는 사고 며칠 만에 끝내 세상을 떠났고, 그 남편 또한 크게 다쳤다는 보도가 있었다.
킥보드는 빠르고 편리하고 도시의 새로운 이동 수단이지만, 또 소리 없는 위험이기도 하다. 오토바이처럼 소리도 없고, 자전거처럼 페달 소리도 없다. 그 조용함이 때로는 경고의 부재가 된다. 도심의 인도나 공원길, 심지어 어린이들이 뛰노는 산책로에서도 전동 킥보드는 종종 나타난다. 원래는 자전거 도로를 이용해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행자 곁을 스치듯 달리고, 자동차 틈새를 비집고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그 무심한 속도는 단 몇 초 만에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사람이 걷는 길은 삶의 속도와 온도가 들어있다. 멈추기도 하고 또 살피고, 함께 호흡하는 곳이다. 아이가 옆에서 떨어질까 손을 꼭 잡고, 어르신의 발걸음에 맞춰 속도를 늦추는 그 느림의 질서가 있다. 그러나 빠름의 요즘 시대엔 뭔가 자꾸 앞만 보고 달리라고 하는 것처럼 부추기는 듯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이 만든 세상은 함께 살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종종 너무 앞질러 달리고 있다. 그 어떤 규제하는 일보다 먼저, 마음의 속도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조금만 더 배려 있게 행한다면, 그 한 걸음이 따뜻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날 공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동 킥보드의 뒷이야기가 무성했다. 모두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모두가 놀랐다. 가족은 세상에서 먼저 배우는 공동체다. 그 안에서 배려와 사랑을 익히는 최소 단위를 깨뜨린 것이다. 안전은 마음의 거리다. 타인을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로 여겨야 한다.
가족과 함께 걷던 그 오후, 삶은 어쩌면 긴 산책길 같은 것 아닐까. 때로는 험하고, 때로는 아름답다. 혼자 걸으면 불안하고, 함께 걸으면 든든하다. 그래서 사람은 길 위에서 사랑을 배우고, 또 그 사랑으로 세상을 안전하게 만든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진심으로 지켜야 할 것은 변하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서로를 향한 배려, 그리고 한 걸음 배려할 줄 아는 마음. 그것은 문명보다 오래가고, 기술보다 귀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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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며 오늘도 수많은 발자국을 남긴다. 그 발자국마다 사랑이 묻고, 배려가 스며든다면, 세상은 훨씬 부드러운 색으로 물들 것이다. 오늘도 가족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걷는다. 함께 걷는 길이 안전하고 따뜻한 길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