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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숨결이 머물던 자리

인생의 정자나무는 무엇일까

by 현월안




옛날부터 마을 어귀에는 대부분 정자가 있었다. 정자는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고, 사람들의 숨결이 머물던 자리였다. 사람들이 오가며 발길을 멈추는 곳이고, 바람이 쉬어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천천히 앉아 쉬는 곳이고 바람 좋은 자리에 지은 정자는 삶의 쉼표이자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풍경이 좋은 절벽 위의 정자가 사대부의 수양 공간이었다면, 마을 어귀의 정자는 농부의 삶이 오르내리던 공간이었다. 낮이면 밭일을 마친 사람들이 흙 묻은 손을 털며 모여들었고, 저녁이면 아이들이 뛰놀며 웃음소리가 퍼졌다. 그 웃음과 이야기, 그리고 나무 그늘 아래의 바람이 하나의 문화가 되어 마을의 숨결을 이어주었다.



우리 고향 마을에도 그런 정자가 있다. 정자 옆에는 늘 그늘을 드리운 정자나무가 서 있다. 느티나무다.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해 여름이면 푸른 그늘이 마을을 품는다. 큰 나무는 언제나 큰 그늘을 만들고, 그 그늘은 사람을 모이게 했다.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였고, 어른들에게는 쉼과 회의의 공간이었다. 마을의 대소사가 논의되고, 때로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오가던 곳. 어르신들은 지팡이를 옆에 두고 옛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길 가던 이는 지친 짐을 내려놓았다. 새들은 가지 높은 곳에 둥지를 틀었고, 계절은 나뭇잎의 빛깔을 바꾸며 세월을 노래했다.



이번 긴 연휴기간에 형제자매들과 고향을 찾았다. 동네는 새롭게 변해가는데 그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을 품고 그대로 있다. 나무의 줄기에는 아이들의 손길이 새겨져 있고, 껍질의 굴곡에는 세월의 흔적이 조용히 겹겹이 쌓여 있다. 그 아래서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반가움에 인사를 하는 듯하고 알 수 없는 전율이 일렁인다. 마치 나무가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고, 그때 그 웃음소리와 흙냄새, 여름 저녁의 매미 울음까지 함께 품고 있는 듯했다.



도시는 늘 바쁘게 변하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에 쫓겨 살아간다. 하지만 고향 마을 느티나무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세월의 손길이 닿았음에도 마을 어귀의 정자와 느티나무는 변함이 없다. 정자는 새 단장을 해 더 세련되어 있고, 정자나무는 여전히 그 넓은 품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 나무를 마주하자,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구나.' 나무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지만, 그 침묵 속에서 삶의 위로가 느껴졌다.



정자나무 아래 서면, 세월의 온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정자나무는 수백 번의 봄을 맞이하고 수백 번의 겨울을 견뎌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푸르고, 여전히 그늘을 내어준다. 사람도 나무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흔들리되 꺾이지 않고, 잎을 떨구되 다시 피워내며, 자신이 선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품는 삶 말이다.
정자나무의 그늘은 누군가의 기다림이고, 누군가의 기억이며, 또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다.



가끔, 인생의 정자나무는 무엇일까. 바쁜 일상 속에서 쉬어갈 수 있는 그늘,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나의 삶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사람일 수도 있고, 오래된 책 한 권일 수도 있고, 또 고향일 수도 있다. 나에게 고향의 정자나무가 바로 그런 존재다.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 아래 앉으면, 잊고 있던 나 자신이 다시 살아난다.



정자나무는 세월의 거울이다. 그 아래서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노인마저 사라지면 나무는 또 다른 아이의 웃음소리를 품는다. 그렇게 세월은 이어지고, 삶은 계속된다. 나무는 기억을 잃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모두의 숨결을 품고 그리고 세상의 사랑을 고스란히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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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한가운데, 고향 마을의 정자나무 아래 앉았다. 바람이 낙엽을 흔들며 속삭인다. "괜찮아" 하는 듯해서 순간 따뜻하게 전해진다. 삶이란 어쩌면 흘러가는 바람을 잠시 머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정자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품 안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삶의 따뜻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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