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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가을이 깊어간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이유 없이

by 현월안




소리 없이 가을이 깊어간다. 지난여름을 떠올리면, 가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자연은 언제나 제 자리를 잃지 않는다. 계절의 순환을 거스를 수는 없다. 푸르던 나뭇잎은 어느새 붉고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하늘은 높고 푸르며, 바람은 쓸쓸함을 머금는다. 나무에는 낙엽이 바람에 흔들리고, 담장 너머 국화는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다. 그렇게 가을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스며든다.



봄이 희망과 설렘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비움과 그리움의 계절이다. 봄이 사람을 시인으로 만든다면, 가을은 철학을 말한다. 봄이 무엇을 새롭게 피워내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놓아주는 계절이다. 삶 또한 자연의 이치를 따라 흐른다. 그래서 가을이면 문득, 삶의 덧없음을 생각하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이라 부르며 저마다의 이유로 가을을 노래한다. 가을은 겉으로는 아름답고 고요하지만, 그 속에는 성숙과 이별, 풍요와 허무가 함께 자리한다. 눈앞의 풍경은 황금빛으로 물들지만, 그 색채 속에는 사라짐이 들어 있다. 나뭇잎이 붉게 타오르는 것은 생의 마지막을 향한 뜨거운 인사다.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더욱 눈부신 이유는, 곧 사라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은 유독 인간의 감정을 건드린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이유 없이 마음이 허전해지고, 들려오는 노래가 다 내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진다. 가을엔 일조량이 줄고, 기분이 가라앉는다. 인간은 조금 더 외로워지고, 더 생각이 많아진다. 그것은 계절이 주는 자연의 섭리다. 마음이 낮아지고 고요해질 때, 비로소 나를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햇살이 좋은 오후,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들고 있으면, 유난히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지나온 날들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수많은 선택들이 그 속에서 빛난다. 그 빛은 잔잔하고 따뜻하다.



가을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을 것인가를 묻는다.

삶은 끊임없는 비움의 연속이다. 가득 채운 컵은 넘치기 마련이고, 마음을 비워야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나뭇잎이 스스로를 떨어뜨리듯, 인간도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한다. 욕심도, 미련도, 지나간 관계도. 비움은 다시 채우기 위한 준비다. 그렇게 비워낼 때, 삶은 더 단단해지고, 마음은 더 맑아진다. 가을 햇살은 모든 생명에게 다정하다. 무심한 듯 따사로운 빛으로, 오래된 마음의 상처까지 어루만진다.



요즘의 가을이 예쁘다. 그냥 바라보기에도 아까울 만큼 예쁘다. 산책길의 은행잎, 도로 옆의 단풍, 하늘 아래 드리운 얇은 구름까지 모두가 부드럽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아름답고, 더 귀하다. 인생도 그러하지 않은가. 붙잡으려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흩어진다. 젊음도, 사랑도, 시간도. 그러나 그 떠남이 삶의 끝은 아니다. 그것은 다음 계절을 위한 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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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그 지나감 속에 진짜가 남는다.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높고 푸른 하늘, 멀리 흩어지는 구름, 바람에 나부끼는 코스모스 한 송이. 가을은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깨닫게 하고, 잃음 속에서 채움을 배우게 한다. 햇살이 손등 위에 내려앉는다. 따뜻하다. 그 온기만큼 또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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