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집안일을 가전제품이 다 한다
언제부턴가 집안일은 전자제품이 다 한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매일같이 돌아가고, 의류관리기는 니트 한 벌에도 부드러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인덕션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불을 끄고, 광파오븐은 요리의 온도를 정확하게 맞춰서 가장 맛있는 맛으로 생선을 구워낸다. 그릇을 많이 쓴 날이면 식기세척기가 사근사근 물살을 뿜는다. 심지어 내 부주의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거실 바닥에서는 로봇청소기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또 무선 청소기는 하루 한 번 소리 없이 먼지를 삼킨다. 두유 제조기와 요플레 메이커, 믹서기와 계란찜기까지, 어느새 나의 일은 가전제품이 모두 일을 한다. 버튼 몇 번 터치하는 삶. 편리함은 이미 생활을 넘어 습관이고, 습관을 넘어 의존이 되었다.
문득, 아주 작은 두려움이 스친다. 모든 가전제품이 멈추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전기가 끊긴 하루, 혹은 이틀. 세탁기와 청소기도, 인덕션이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아주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다. 편리함은 누군가의 노고를 대신해 준 선물이지만, 또 전기의 의존에 묶어 둔 속박이기도 하다. 많은 혜택 속에서 또 그 어떤 재앙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 편리함 뒤편에는 또 하나의 생각이 고요히 스친다. 엄마의 손이다. 엄마는 일 많은 종갓집 종부로 한평생을 사셨다. 그 옛날 할아버지가 두루마기를 입던 때, 한 겨울 개울가에 리어카 가득 빨랫감을 싣고 가셨다고 했다. 두루마기를 입는 어른들 옷은 무거웠고, 세탁은 모두 손의 몫이었다. 고무장갑조차 없던 시절 얼음장 같은 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하셨다. 손가락이 퉁퉁 붓고, 손등이 트고, 물기가 얼어붙던 그 계절 이야기를 엄마는 가끔 담담하게 풀어내셨다. 마치 삶이 원래 그런 것이라도 되는 듯, 이야기보따리를 꺼내 놓으셨다.
요즘 버튼 하나로 빨래를 마무리하고, 따뜻한 공기로 말린 옷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러고도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다 문득 죄스러워진다. 첨단의 편리함 속에서 나는 엄마가 지나온 길을 가끔 떠올린다. 그 길은 손등의 상처와 거칠어진 살갗으로 새겨진 역사였다. 사랑을 짓고 삶을 버티며, 묵묵히 집안을 지켜낸 엄마의 손. 그 손이 있었기에, 지금 전기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기계를 부리며 살고 있다.
인간은 편리함을 찾아 진화한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더 수월한 방법을 선택하고, 시간을 아낀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앞서도, 사람이 만든 그 모든 기계 안에는 결국 엄마의 손길이 녹아 있다. 편리함은 사랑의 번역이다. 시간과 노동을 대신해 주는 모든 장치들은 사실 누군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가끔 엄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은빛 세탁통이 돌아가는 소리 대신 개울물 소리가 울리던 날들. 뜨거운 건조기 열이 아닌, 겨울 햇살에 얼어붙던 손등. 그 시절을 살아낸 엄마 세대의 분들 덕분에, 나는 지금 버튼 하나로 하루를 정리하는 편리를 곁에 두었다. 그래서 이 편안함이 고맙고, 그만큼 마음이 걸린다.
전기는 오늘도 집안에 빛을 켜고 바람을 돌리고 물을 데운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는 늘 한 줄기 바람이 지난다. 엄마가 빨던 두루마기의 무게, 그 무게를 견디던 손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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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전기가 멈추는 대 재앙을 상상한다, 기계를 믿고 살지만, 진심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엄마의 두 손과 그 사랑이었다. 오늘도 전자제품이 바쁘게 움직인다. 나는 커피를 내리며 문득 미소 짓는다. 엄마시절을 겪은 분들 덕분에 참 따뜻한 세상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