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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월안 Nov 09. 2023

우리 집 김장하는 날

종갓집 종부, 엄마 김치 따라 하기

    우리 집 김장을 하는 날이다 김장을 해야 하얀 겨울을 제대로 기다릴 것 같고, 김장을 마쳐야 겨울의 혹독한 찬기운몰려와도 위안이 된다 겨울에는 그래도 따뜻한 방 안에서 여유를 부릴 것 같아서 김장을 꼭 한가을비가 오고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겨울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온 듯하다 춥기 전에 조금 서둘러서 일찍 절임배추를 주문해 두었다 남편과 둘이서 김치에 들어갈 야채를 다듬고 썰고 다지고 준비를 했다 요즘 이슈가 되는 핫한 뉴스 기사를 가지고 토론해 가며, 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한 중년의 요리사 모습이었김치는 소소하게 잔손이 많이 간다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는 갖가지 양념들이 많아서 며칠 신경이 쓰인다 다행히 남편은 꼼꼼하게 시키는 일을 아주 잘 도와준다 무슨 일이든 시키면 나름 머리를 써서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연구한다 일상에서도 늘 뭔가를 뚝딱거리며 일상이 연구이실천하는 사람이라서 뭐든 시키면 아주 맘에 들게 잘 도와준다


    언젠가부터 절임배추를 주문해서 김치를 담는다 김치는 생배추를 사서 소금에 절이는 과정이 좀 번거로운데, 요즘은 절임배추를 하면 김치 만드는 과정이 반으로 줄어들고 아주 손쉽게 할 수 있다

매년 우리 집 김장 김치는 절임배추 40kg을 담았는데 올해는 절임배추 20kg로 줄여서  담았다 늘 욕심을 부려서 김치를 많이 하다 보면 매번 남게 되고, 마지막에는 김찌찌개에 맛이 든 김치를 듬뿍 넣어서 소비를 하곤 했었다 매번 남아돌아도 김장철에 담는 김치 욕심은 참을 수가 없었 김장 김치를 담아 놓으면 왠지 모를 행복한 여유로움이 있다 마치 먹을 양식이 꽉 채워진 느낌 같은 나만의 뿌듯한 여유다


    요즘은 특수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아서 겨울에도 생야채가 많이 나온다 생으로 샐러드를 많이 먹게 되, 아무래도 김치는 점점 덜 먹게 된다 식구들도 생야채 그대로 쌈으로 먹거나 소스를 살짝 곁들이는 것을 즐겨 먹는겨울에도 갖가지 생야채 종류가 많아서 마트에 가면 많이 사게 된다 늘 냉장고가 꽉 채워진 우리 집 냉장고는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식재료에 욕심이 많고 생야채를 많이 먹다 보면 아무래도 김치에 손이 덜 간다 우리 아들과 딸도 김치보다 푸릇한 생야채를 좋아한다 아무래도 생야채에 입맛이 깃들여져 있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김치를 덜 먹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넘쳐나서 김치에 손이 가질 않고 김치를 만들어 먹지 않는다 김치 만드는 과정과 김치는 재료 준비가 많이 번거롭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해서 젊은 사람들이 손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젊은 사람들이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매체 보도가 있는 걸 보면, 이러다가 언젠가는 '김장 김치라는 말이 없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친정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양념으로는 황석어 젓갈과, 새우 젓갈 멸치 젓갈을 적절히 넣고, 쪽파와 갓을 넣었다 배와 사과를 갈아 넣고 무채를 썰어 넣고 찹쌀 풀을 끓여 넣고 양념을 했다 종갓집 친정 엄마의 솜씨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흉내를 다 남편과 번갈아 가며 여러 번 맛을 본 후에 조금은 달달하게 종갓집 친정 엄마표 김치를 완성했다 배추김치는 일 년 중에 가을배추가 육질이 단단하고 아삭해서 저장해서 먹으면 맞춤 제맛고, 시원한 그 맛이 가을배추가 가장 으뜸이라고 행복한 표정으로 흐뭇하게 얘기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이번 김장은 적절히 맛있게 배합된 양념과, 남편의 손맛과 나의 손맛이 잘 어우러져서 '겨울 내내 우리 가족의 행복한 밥상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옛날 친정 집에는 가을 끝자락이 되면 500포기쯤 되는 김장을 했다 그만큼은 김장을 해야 종갓집 대소사가 이루어졌다 김장은 종갓집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집안사람들이 모여서 잔치하듯이 모여서 추운 겨울 내내 먹을 식량을 만드는 날이었다 김치의 종류도 갖가지 온갖 종류별로 몇 날 며칠을 다듬고 절이고 담그고, 모두 하얀 두건을 쓰고 하얀 앞치마를 똑같이 두르고 친척분들과 함께 김장하는 날은 수고로움이 많았진두지휘하시는 엄마의 표정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랑이 가득한 종부의 모습이었다 참으로 그 길고 힘든 세월을 어찌 견뎌내셨을까 싶다 지나고 보았더니 엄마의 지난 시간은 일 많은 '종갓집 종부의 고단한 시간'이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우리 집에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던 '종갓집 김장하는 날' 그때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김장하는 날은 우리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추었고, 김장김치로 나누는 밝은 웃음소리들과, 그 웃음 속에는 따뜻하고 포근한 정겨움가득했다 그날의 정겨운 소리가 내 안에 가득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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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을 할 때는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 친정 엄마가 맛을 내시던 김치 맛은 아니지만, 그나마 어깨너머로 배워서 그 맛을 흉내 낸다 요리하고 김치 담그는 것을 재미있게 한다 무슨 요리든 겁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종갓집 종부였던 엄마의 음식 솜씨 덕분이다 어느새 정 많은 엄마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엄마의 지난 시간이 내게도 남아있다 가끔은 엄마표 김치가 그립다 엄마 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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