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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시간이 사라지는 순간

음식의 맛과 정성과 철학과 사랑을 손끝에서

by 현월안




남편이 순댓국을 즐겨 먹는다. 나는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남편을 따라서 먹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자주 가는 순댓국집은 소문난 맛집이었다. 그 가게는 새우전과 파전은 바삭하게 맛있고, 누른 머리고기는 담백한 맛이 맛있고, 주 메뉴인 순댓국은 정성이 들어있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늘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풍경이 그곳에는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비던 풍경이 사라졌다. 사람들의 발길은 줄어들었고, 넓은 가계에 손님은 거의 없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주인장의 삶의 무게와 결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가게의 장점은 정갈함이 최고였다. 요리는 요리대로, 반찬은 반찬대로, 그 모든 것이 시각적으로도, 미각적으로도 손님에게 흠뻑 전달되도록 정성껏 준비되었다. 작은 접시 위에서도 음식 장인의 마음과 손끝의 철학이 느껴졌다. 그 정성은 맛으로 확인해 주었다.



어느 날, 순대가 메뉴에서 사라졌다. 칠십이 넘은 주인장 부부는 직접 손질하고 순대를 직접 만들었다. 그런데 순대 만드는데 손이 너무 많이 가고, 힘에 부쳐서 순대를 그만뒀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는, 그제야 이해가 됐다. 아무리 맛있고 소중한 것이라도, 그것을 만드는 이의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없으면 지속될 수 없다. 손질에서부터 속을 채우고 삶아내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 주인 부부의 삶을 담았던 것이다.



그 순댓국 맛을 본 사람들은 몇 번이고 부탁을 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만들어 주시면 안 되냐고, 그런데 그의 의지는 단호했다. 그는 손쉬운 효율성을 위해 공장에서 만든 순대를 쓰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음식 장인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30년의 시간과 맛과 철학을 함께 담은 순대를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였다.



대신 순대 배우고 싶은 사람이 오면 가르쳐줄 의향은 있다는 말에 왠지 쓸쓸함이 묻어있다. 그의 말속에는 자신만의 철학이 함께 담겨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정갈한 맛, 다시 그 순대 맛을 못 보게 되었다. 아쉬움은 단순히 한 그릇의 맛을 잃는 것이라기보다, 손끝에서 전해지던 세월의 맛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



순대라는 음식이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된 순간, 그동안 얼마나 귀한 맛을 보았는지 알게 되었다. 주인 부부를 닮은 정갈한 맛이었다.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한결같이 느껴지는 편안함,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과 의지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날 가게 주인의 아쉬운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한 자리에서 30년 동안 자신만의 철학을 담아 음식을 만들어온 그의 삶, 손님을 향한 애정, 그리고 이제는 자신을 위해 선택한 변화까지 들을 수 있었다. 한 그릇의 음식이 사라졌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남았다.



이제 그 가게 메뉴는 순두부찌개 전문점으로 변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도, 음식도, 취향도 변한다. 하지만 가끔 그 정갈함과 단단한 철학, 손끝에서 전해지던 사랑을 느끼러 남편과 가끔 그곳을 찾을 것이다. 새로운 메뉴 속에 그 주인의 삶과 의지가 또 듬뿍 담길 테니 말이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정성과 철학, 사람이 가진 굳은 의지와 사랑. 그것을 시간의 깊이로 기억한다. 그 속에서 삶의 깊이를 느끼고, 무엇이 소중한지,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 배우게 된다. 한 그릇의 순댓국을 통해 사람의 손끝과 마음이 만든 아름다움이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언젠가, 그 손길과 철학은 다른 메뉴에 또 이어질 것이다. 그 연결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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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정성과 손끝에서 삶을 담아내는 한 사람의 선택은, 누군가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음식은 신기하게 멀리 있는 이도 불러들이는 힘이 있다. 아마도 그 가게 주인 부부는 그 철학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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