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
겨울로 스며드는 공기는 어느새 차갑고, 사람들의 마음은 따뜻한 온기 하나씩 덧입는 계절이다. 이맘때면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이유 없이 마음이 살짝 내려앉는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긁힌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마음의 온도를 드러내는 말이다. 누군가의 말이 나의 약한 곳을 스치고 지나갈 때 쓰는 말이 되었다.
언제부터 하나의 단어가 이렇게 빠르게 퍼지고 널리 쓰인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삶에서 인간관계는 어쩌면 더 자주 긁히고, 더 쉽게 긁힌다. 어쩌면 사회가 지닌 미묘한 긴장과 불안, 그리고 서로에게 익숙해진 무심함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보면 '긁힌다'라는 말에는 여러 감정이 들어 있다. 존중 대신 비교가 앞서고, 조언 대신 평가가 쉬워지고 들으려 하기보다 먼저 말하려는 심리가 들어 있다. 누군가의 작은 단점이, 조용히 묻어둘 수도 있는 허물이 타인의 말 한마디로 갑자기 주목을 받는 순간이다. "긁혔어"라고 농담처럼 툭 내뱉지만 그 말속엔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씁쓸한 친밀감이 깃들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한 부분을 안고 산다. 그 약함이 자극되는 순간의 민감함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어떤 말은 날카롭지만 이상하게도 상처가 되지 않고, 또 어떤 말은 평범하기 그지없는데도 유난히 그 말 한마디가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쓰라린다. 그건 말의 무게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상처가 이미 더 넓고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상처는 본질적으로 바람에 일렁이는 얇은 커튼처럼 가볍기도 하지만, 또 오래된 흉터가 건드려질 때의 고통처럼 무겁다. 요즘 세상은 훨씬 더 많은 이해관계의 충돌과 더 복잡한 비교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직장에서는 성과와 사회 구조 속에서 서로 얽혀있는 관계가 늘 서로를 압박하고 민감한 부분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삶을 살아갈수록 더 자주 긁힌다. 그리고 더 빠르게 반응한다. 그럴 때일수록 필요한 건 조롱의 웃음이 아니라, 서로의 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조심히 다가가고자 하는 따뜻한 섬세함이다. 서로를 긁고 긁히는 악순환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오히려 니의 약점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으려는 누군가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 보이는 일. 그것이 어쩌면 단단한 관계의 첫걸음이다.
상처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상처가 있다는 것은 나를 약하게 만드는 대신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긁히는 만큼 너도 쉽게 긁힐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 그 공감의 감각이 사람답게 만든다. 그래서 조롱의 가면 뒤에 숨어 서로를 약한 존재로 바라보는 대신, 같은 상처를 가진 존재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가진 상처를 이해하고 애쓰는 일이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 뒤에 숨은 균열을 보고도 슬쩍 눈감아 주는 일, 말 한마디로 상대의 마음을 허물어뜨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는 일, 그리고 언젠가 내가 무심히 던진 말이 누군가에겐 오래 지속되는 파문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는 일. 모든 것들이 서로에게 건네야 할 조심스러운 사랑의 손길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거칠고 빠르다. 가만히 숨만 쉬고 살아도 상처 입기 쉬운 세상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고,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고 서로의 마음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수 없다. 긁히는 순간마다, 어쩌면 상처를 웃음으로 덮어야 하는 근육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ㅊ
어쩌면 날카롭게 스치는 말들 사이에서 어떻게 더 온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작은 상처가 더 유연하게, 더 다정하게 만드는 방범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긁히는 감정의 너머에는 서로를 보듬으려는 인간의 오래된 본심이 있다는 사실을. 상처가 스치고 지나가는 그 자리에 조용히 놓아두는 한 줌의 따뜻한 시선. 그것이 어쩌면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끝내 잃지 말아야 할 사랑의 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