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 보인다는 말이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자신이 동안이라 믿는 사람은 꼭 집 밖 거울 앞에 서 봐야 해요" 순간, 모두가 웃었다. 그러나 그 말속엔 묘한 진실이 숨어 있다. 집 안 거울은 나에게 관대하다. 조명은 부드럽고, 각도는 익숙하고 시선은 나를 위주로 기울기 마련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의 거울 속에, 지하철 유리창의 검은 반사면 앞에서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처진 눈가와 깊어진 주름과 희미해진 생기까지 모두 드러난다.
요즘은 젊어 보인다는 말이 가장 값비싼 찬사가 되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관리해야 할 요건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또 모임 자리에서조차 주름 하나에도 신경이 쓰이고, 피부 톤은 관리해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어느 연예인이 오랜만에 tv 화면에 나온 모습을 보고 세월의 흔적과 주름진 얼굴을 보며 안도를 하고, 나만 늙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말은 씁쓸한 위로다.
언젠가 tv에서 외국인이 서울의 첫인상을 묻는 인터뷰를 봤다. 그는 도시의 활기보다 먼저, 거리마다 완벽하게 꾸민 얼굴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다 똑같이 생겼어요. 예쁜데, 슬퍼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어쩌면 사회는 젊음을 삶의 내용이 아니라 조건으로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모임에 나가면 종종 시술이 화제다. 누구는 리프팅을 했고, 누구는 필러를 맞았고, 가격과 효과와 부작용까지 자세히 공유된다. 그 대화 속엔 웃음이 섞여 있지만, 한편에는 나이 들어가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아직 괜찮다는 확인일테고, 또 너무 늙지 않았다는 안도일 것이다.
딸의 권유로 동안크리닉을 다녔다. 시술 직후엔 분명 거울 속 얼굴이 달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시간이 다시 그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그때 알게 된다. 내가 바꾸려던 건 얼굴이 아니라, 나이를 받아들이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거울 앞에서 주름을 볼 때마다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그건 세월의 주름이고 내가 살아온 날들의 흔적이다.
젊음이 아름다운 건 생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더한 얼굴에는 그 생기보다는 시간이 쌓여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별하고 웃고 울며 살아낸 시간들이 거기 새겨져 있다. 그리하여 나이 든 얼굴은
시간의 기록이고 사랑의 흔적이다.
프랑스의 어느 배우가 시상식 자리에서 말하는 걸 보았다. "얼굴에 주름을 지우지 않는다. 그건 내가 웃어온 자리니까.." 그 말이 참 따뜻하게 들렸다. 모두가 젊음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마도 사랑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주름진 얼굴 너머의 이야기다. 서로의 세월을 존중하고, 늙어가는 모습까지 품을 줄 아는 마음. 그것이 성숙한 사랑이고 삶의 격이 아닐까 싶다.
오늘 나를 다정히 바라본다. 눈가에 깊어진 주름은 아이를 키우며 흘린 웃음의 자국이고, 목의 잔주름은 인생의 바람을 견뎌낸 흔적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쇠락이 아니라 완성이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주름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다. 얼굴은 늙어도, 마음이 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여전히 젊음을 안고 있는 것이다. 거울 속의 나는 어제보다 늙었지만,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넓은 마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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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거울 앞에 선다.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웃어 본다. 그 웃음이 나를 젊게 한다.
아니, 젊게 보이게 하는 것이라기보다 더 인간답게, 더 다정하게 만들어준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