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숨결에 담긴 사랑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죽음은 나와 상관이 없는 듯이 외면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삶은 죽음이라는 강을 향해 흐르는 긴 여정이다. 언젠가 그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을 미룬다. 병이 들어 응급실로 실려가거나, 또 갑작스러운 사고로 삶의 끈이 끊어질 때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었는지를 인식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잠을 자듯 편히 죽고 싶다고 말한다. 고통 없이, 준비 없이 마치 삶이 잠시 멈춘 듯 자연스럽게 떠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 갑작스러운 죽음은 편안함의 다른 이름일 뿐, 때로는 아쉬운 이별이 된다. 죽음은 남은 이들에게 삶을 가르쳐 주는 마지막 시간이기 때문이다. 임종의 순간은 두려움과 슬픔과 사랑이 뒤섞인 시간이다. 그 시간은 숨이 멎어가는 과정이면서, 또 사랑이 뜨겁게 흐르는 시간이다.
친정 엄마의 마지막 순간이 그러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세월을 조용히 견뎌내던 엄마는 평소처럼 데이케어센터에 다녀오셨다. 평범한 오후였다. 그날도 빨래 건조대에 걸린. 빨래를 모두 하나하나 곱게 개어 단정히 정리하셨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이불 위에 몸을 기대고는 스르르 잠이 드셨다. 그렇게 조용히, 바람 한 점 스며들지 않게, 엄마는 떠나셨다.
그날 이후 난 오래도록 빨래에 스민 엄마 온기를 떠올렸다. 햇살에 바싹 말라 따뜻했던 수건과 손끝에 닿던 부드러운 천의 감촉은 마치 엄마의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졌다. 죽음은 어쩌면 그렇게 일상의 한 장면 속에 녹아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거창한 예고도 없이, 평생의 습관처럼 조용히 찾아와 가족 곁을 떠난다.
병상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은 마지막까지 숨을 세듯 초조하게 시간을 마주한다. 남은 가족들은 그 숨 하나하나에 생의 흔적을 읽고,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한 번만 더 숨을 쉬게 해달라고,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그때 터져 나오는 울음은 살아온 세월에 대한 감사이고 함께 나눈 시간에 대한 사랑이다. 태어날 때 울음으로 또 떠날 때도 울음 속에서 이별을 맞는다. 죽음의 자리는 그렇게 삶과 삶이 맞닿는 순간이 된다.
엄마의 평온한 죽음은 내게 많은 것을 남겼다. 죽음은 받아들여야 할 자연의 한 장면이라는 사실이었다. 나무를 보며 낙엽이 지는 것을 초연하게 바라보듯, 생의 마지막 장면 또한 그렇게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일 것이다.
가끔 나이가 들수록 죽음은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온다. 젊을 때는 막연한 공포였던 죽음이, 어느 순간 삶의 일부로 다가온다. 먼 친척의 부고 소식이 잦아지고, 가까운 지인의 말기암 소식, 부모를 떠나보내고... 문득 알게 된다. 언젠가 마주 할 죽음은 하나의 과제가 된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떠나고 싶은가. 내 마지막 숨결은 어떤 온도로 기억되고 싶은가.
엄마처럼 평온한 얼굴로, 사랑하는 이들을 걱정하지 않게, 그저 삶의 마무리로서 그것은 바쁘지 않은 죽음일 것이다. 응급실의 불빛 아래 허둥대지 않고, 인공호흡기의 기계음에 묻히지 않은 죽음이다. 사랑했던 사람들과 눈빛을 나누며, 세상의 향기를 마지막으로 들이마시며, 그렇게 천천히 맞이하는 것 말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죽음을 준비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문제다. 살아 있는 동안 서로에게 따뜻하게 말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 그 모든 순간이 쌓여 마지막을 만든다. 마지막 숨결의 온도는 그렇게 사람 인생의 온도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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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의 숨이 멎는 날, 가족들은 내 곁에서 내 호흡을 세고 있을 것이다. 죽음은 삶이 나를 완성하는 가장 마지막 문장이다. 그 문장을 아름답게 쓰기 위해,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다정하게, 사랑의 숨결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