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일은 인간관계의 여러 장면과 맞닿아 있다
가까이 지내는 작가가 있다. 그녀는 책을 읽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그 책을 두 번, 세 번까지 읽는다. 첫 독서에서 얻은 울림을 다시 더 깊은 곳으로 불러내고, 곱씹으며 메모장을 채운다. 그렇게 기록된 문장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희미해지지 않는다. 책 한 권을 읽고 또 반복 사유를 하고 단단하게 그녀의 것으로 만드는 오래된 습관이다.
그녀는 늘 읽고 난 책에 대해 조용히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말한다.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길어 올린 감각은 묘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면, 마치 내가 직접 그 장면을 본 것처럼 생생해지고, 그가 느낀 사유의 깊이가 내 마음속에서도 문을 하나 열고 들어온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신뢰를 한다.
책을 여러 번 읽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 해도 독서는 노동이다. 몸과 마음을 한 방향으로 모아야 하고, 문장 앞에서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어야 한다. 며칠, 때로는 몇 주를 쏟아부은 끝에 책이 내게 남긴다. 그래서 좋은 책을 만나는 일은 귀하다. 그리고 좋은 책을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은 더 귀하다. 한 권의 책을 인연처럼 대하고, 시간을 들여 다시 마주하고 단단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사람은 삶에서도 그렇게 깊은 울림을 지닌다.
책은 사람을 여러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창작의 숨을 준비하는 예비 행위이고,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읽고 싶은 마음은 또 쓰고 싶은 욕구와 맞닿아 있다. 남의 문장을 들여다보며 나만의 글을 꿈꾸게 되고, 누군가의 사유를 읽는 동안 내 안의 미세한 떨림이 깨어난다. 수려하되 명징하고, 담백하게 깊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문득문득 되살아난다.
책을 펼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선택한 책이 끝까지 함께할 운명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내려놓아도 되는 인연인가. 어떤 책은 첫 장만 읽어도 마음이 닿지 않아 이별을 예감하게 되고, 어떤 책은 두 페이지를 넘기기도 전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처럼 마음을 잡아당긴다. 책을 바라보는 마음과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은 닮았다. 가까이할수록 본질이 드러나고, 오래 읽을수록 숨겨진 결이 빛난다. 때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만 비로소 이해되는 사람도 있고, 두세 번의 만남 후에야 왜 소중한지 알게 되는 사람도 있다.
책을 읽는 일은 인간관계의 여러 장면과 맞닿아 있다. 성급하게 판단하면 쉽게 오해를 낳고, 제대로 들여다보면 서서히 마음이 열린다. 어떤 글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진가를 드러내듯, 어떤 사람도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진심이 보인다. 그리고 누군가를 깊이 이해한 사람만이 다시 관계를 이어간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그 작가는 같은 책을 두 번, 세 번 읽는다. 그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사유를 쌓아 올리는 꾸준한 연습일 것이다. 그 깊은 독서가 그녀의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녀의 언어를 믿게 만들었다. 아마도 인간이 가진 소양은 그런 것인지 모른다. 반복할 줄 아는 사람, 곱씹을 줄 아는 사람, 의미를 한 번에 소비하지 않고 천천히 숙성시키는 사람. 그런 습이 한 사람의 깊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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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며 나에게 되묻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다시 읽고 싶은 사람인가.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아닌, 시간이 지나도 다시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인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건 대단한 철학이다. 그것은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삶을 대하는 철학이다. 그리고 그 철학은 어떤 사람으로 빚어내는지, 단단함이 무엇인지 조용히 알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