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것은 따스한 시선이다
일인당 한해 독서량이 점점 더 감소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전 세계와의 비교 통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온 현실이다. 손끝으로 화면을 넘기는 일이 책장을 넘기는 일보다 쉬워졌고, 영상은 텍스트보다 더 빠르게 눈과 귀를 붙잡는다. 뇌가 빠르게 자극하는 것을 택한다. 그 흐름은 놀라울 것도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독서량의 감소와는 달리, 글쓰기 열기는 오히려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글이 머무는 공간을 갖고 싶어 한다. 블로그와 SNS, 짧은 글과 긴 글, 기록과 고백, 성찰과 투정이 뒤섞인 채 오늘도 수많은 문장이 태어난다. 글쓰기라는 행위를 가지고 꾸준히, 그리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자기 세상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글쓰기의 이면에는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이해해 줄 타인을 갈망한다. 말로는 다 해내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과 생각이 글 속에서는 비로소 나온다. 나의 언어가 남의 마음에서 다른 색으로 피어나기를 기대하게 된다. 글쓰기는 그런 의미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여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한 사람의 말은 순간이지만, 한 사람의 글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 여운 속에서 누군가의 마음 한쪽을 천천히 스며들 듯 이해하게 된다.
글쓰기는 언제나 빛과 그늘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미 말의 폭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얼마나 깊게 남기는지 경험했다. 지금의 시대가 겪는 폭력은 더 이상 힘으로만 오지 않는다. 선동적인 글과 오염된 해석과 왜곡된 글이 능숙한 논리의 얼굴을 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흔든다.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때로는 조용한 폭력으로 관계를 파괴한다. 글쓰기라는 아름다운 도구가 타인을 상처 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치유의 글쓰기는 더 간절해진다. 삶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는 글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살며시 좁혀주는 글과, 비난보다 성찰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글이 삶을 품고 사람을 따뜻하게 끌어안는다. 그런데 치유의 글쓰기는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그 출발점에는 다양한 독서가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이 걸어온 길을 잠시 빌려 걷는 일이다.
그 빌린 길 위에서 더 넓은 시야를 얻고, 나의 생각을 한 번 더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고,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함께하는 능력을 배운다. 독서는 다른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일이다. 그 공기가 마음 안에서 뒤섞여 새로운 사유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독서량의 감소는 문화 지표이기도 하고 치유의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이 메말라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금, 사회는 댓글과 게시물의 속도전에 익숙해져 있다. 화살처럼 빠른 반응, 단정적인 판단과 비난의 언어가 손쉽게 흘러나온다. 그러다 보니 글이 생각의 흔적이라기보다 감정의 폭발이 되어버린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때일수록, 한 걸음 물러서 사유의 깊이를 돌아보고, 타인의 마음이 스쳐갈 여백을 마련해 주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따뜻한 시선을 지닌다는 것은 타고난 성정이라기보다,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길러진 감각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나와 다른 생각을 나와 다른 세상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쌓이고 쌓여 따뜻한 글쓰기로 피어난다. 지금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글쓰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관계는 언어로 이어지고, 언어 중에서도 글은 가장 오래 남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따뜻한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을 붙든다. 한 줄의 문장이 어지러운 하루를 조용히 수습해 주고, 혼자라는 느낌을 잠시나마 밀어낸다. 사람을 향해 열린 글쓰기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식어가는 순간에도 온기를 가지는 따스함을 지닌다. 조금 더 깊이 읽고, 조금 더 다정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일은 서로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이론도, 반짝이는 표현도 아니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다른 이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느린 호흡, 그 위에 놓인 단정하고 사려 깊은 문장 하나면 된다. 그렇게 쓰인 글은 폭력이 되지 않으며, 소음을 조금은 가라앉히고 무너져가는 관계의 틈을 조심스레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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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의 마음이 누군가의 글을 읽고 조금 덜 아플 수 있다면, 그 글은 이미 역할을 다한 것이다. 따스한 글쓰기가 더 나은 관계로 이끌고, 더 단단한 삶으로 안내한다면, 어쩌면 지금 가장 필요한 시대정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