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쾌락 원칙을 넘어서'를 읽고

'프로이드' 삶의 깊이를 더하는 서양철학

by 현월안



어떤 상실은 조용히 문을 닫고 떠나고,

어떤 상실은 문을 닫은 뒤에도
집 안을 떠돌며 나의 숨결을 갈라놓는다
슬픔은 세상이 비워지는 일이라면,
우울은 나 자신이 스러져가는 일이다
사람은 그 차이를 너무 늦게 배운다


그러나 삶은 나를 가르칠 만한 장면을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펴 보인다
무심하게 흘려보낸 말 한마디에
불쑥 가시처럼 반응하는 이유,
돌아서며 또다시

그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다투는 이유,

'왜 나만 이런가'라며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이유,


프로이드는

그 반복을 삶의 이탈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자기를 이해시키려
조금 투박하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내면의 오래된 목소리라고 말한다
쾌락보다 더 깊은 곳에서
상처는 연습하듯 되풀이된다
그 반복 속에
모두가 잃어버린 과거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삶은 때때로 설명을 거부하지만
이해받고 싶지 않은 적은 없다
막연한 힘듦은
이름을 얻는 순간
나를 압도하던 그림에서 한 발 물러서게 한다
대상 상실의 처리 실패,
반복 강박,
구조적 위치.
익숙하지 않은 말들이
어느새 내 마음을 정돈하는 손길이 된다


종종 우연이라 믿었던 장면 속에서

사실은 오랜 구조의 반복을 만난다
무심히 던졌던 말버릇이
나를 옭아매던 패턴의 실마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세상은 조금 덜 낯설어지고
나의 선택은 조금 더 명료해진다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라
누군가의 무심한 표정에
과하게 흔들렸던 순간,
말끝을 삼키는 대신
싫어요라고 불쑥 내뱉던 그 찰나,
기대도 없었는데 또다시
똑같은 상처가 나를 찾아온 아침
그 장면에 이름 하나를 붙여보라
설명되지 않던 슬픔이
조용히 자리의 방향을 바꾸고
흐릿했던 감정이
마침내 나의 윤곽을 갖는다


삶은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묻는 사람에게
조금 더 넓은 길을 열어준다
반복의 폐허 속에서도
스스로를 관찰하는 눈을 갖게 될 때,
마침내
휘둘리는 사람에서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사람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반복은 나를 망치려는 힘이 아니라,
마음이 나의 언어를 찾기까지
다시 쓰는 원고지 같은 것임을


오늘, 나의 장면을 펼쳐라
그 장면이 바로
나에게 건네는
첫 번째 해석의 의미가 될 테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