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알면 세상은 그리 지루하지 않다
모임에서 여러 사람이서 점심을 먹으려고 소문난 맛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다른 데로 가자는 이도 있었지만 그대로 기다려보기로 하고 줄을 섰다. 흔히 사람이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길게 늘어진 기다림의 시간을 맞닥뜨린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공백의 순간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허전한 틈 사이를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어한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의미 없는 말들을 흘리고, 그저 무언가에 매달려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 지루함을 감당하는 일이 마치 시간을 갉아먹는 것처럼 힘들어한다. 그런데 인간은 본래 혼자의 시간에 던져진 존재다. 시간 속에서 태어나고 시간 속에서 모든 일이 벌어진다. 그렇기에 시간을 찐으로 누리려면 지루함과 한적함을 기꺼이 가까이 두어야 한다.
잠시 시간이 주어진 지루함을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혼자 있는 순간에 마주치는 나의 작은 소리와 나의 그림자와 마음속의 진실을 외면하는 것 아닐까.
내 안의 침묵을 듣지 못하면 나를 볼 수 없다. 마음의 반짝임과 상처와, 그리고 기쁨과 슬픔의 결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나를 모르고는 나답게 살 수도 없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기준을 빌려야만 내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얻는다. 그래서 삶은 공허해지고 얕아진다.
지루한 시간을 견디게 되면 세상의 소리는 잦아들고 내면의 작은 결까지 들을 수 있는 고요한 공간이 생긴다. 지루함이 열어주는 한적함 속에서만 세상을 넘어서 나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면 타인도 하나의 세상으로 보인다.
지루한 시간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나에게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 속에서 마음의 바닥을 확인하고, 내면에 고여 있는 오래된 물음을 알게 된다. 니체가 말한 '가장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가장 맑은 청량제'는 고요하고 짙은 외로움 순간에 얻어진다고.
세상에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저마다의 고요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세상의 소음에 묻히지 않고,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에 집중할 수 있는 고독한 능력이야말로 삶을 단단하게 한다. 요즘 계절이 겨울 한가운데에 있다. 겨울담지 않게 맑고 적당히 청량하다. 알싸한 기운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홀로의 사유에 적당한 온기를 준다. 낙엽이 다 떨어진 나무조차, 세상이 내게 건네는 작은 철학처럼 느껴진다. 적당히 알싸한 겨울이야말로 지루함을 삶의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고, 마음 깊은 곳의 흔들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 그 고요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나에게 돌아온다. 내게 지루하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다. 또 누군가 함께일 때는 함께여서 좋다. 누구에게도 과하게 기대지 않고, 누구를 붙잡아 나를 채우려 하지 않으면서 관계는 더 따뜻해지고 삶은 더 너그러워진다.
삶을 제대로 알면 지루함은 어색한 시간이기보다 오히려 삶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지루함을 견디는 힘을 통해 나를 알고, 그 앎을 통해 다른 이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 세상을 더 부드럽게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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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견뎌내는 여정이다. 그 고요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더 넓은 사랑과 더 깊은 관계의 세상으로 걸어가게 된다. 지루함을 피할 수 없다. 그 안에 내가 찾던 나의 소리가 있다. 그 소리를 들을 줄 알면, 아무리 홀로 주어지는 시간이라도 삶은 풍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