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아름다운 사람아

술 취한 덤프트럭 그것도 오전 9시 교통사고

by 현월안




아침에는 일어나 늘 그렇게 차 한잔을 마신다. 물이 끓는 소리 위로 찻잎이 서서히 풀어지며 하루의 속도를 늦추던 순간,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부고장이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이름이 틀리지 않는데, 마음이 그 사실을 거부했다. 누구보다 명랑했고, 웃음으로 사람들을 감싸 안던 그 이름이 검은 테두리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낸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라는 말은 질문이 아니라 부정이었다. 지인은 어제도 통화했다며 황당한 현실은 더 밀어냈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무슨 일이 이렇게도 단번에 벌어질 수 있는지, 삶은 왜 이렇게 예고 없이 문을 닫는지. 생각은 실타래처럼 엉켰고, 지난주에 망년회 모임에서 나눴던 사소한 말들까지 거꾸로 되감기처럼 떠올랐다.



서둘러 시간 약속을 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겨울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빛은 더 또렷했고, 맑은 하늘에 긴 띠를 드리우며 천천히 내려앉았다. 세상은 이렇게도 아름다운데, 한 사람의 삶이 이미 멈추었다는 사실에 마음을 베었다. 삶은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웃음이 가득한 영정 사진이 마음 깊은 곳을 때린다. 기도를 드리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사진 속 그녀는 늘 그렇듯 웃고 있다. 저 사진 뒤에서 금방이라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꿈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마음 깊숙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때로는 그녀가 너무 밝아서 늘 웃고 있어서, 그 뒤에 가려진 눈물을 보지 못했다. 손을 내밀고 싶었던 순간들이 없지 않았는데, 망설임은 늘 바쁨이라는 이름으로 미뤄졌다. 함께 나누지 못한 시간이, 말하지 못한 위로가, 뒤늦은 후회로 돌아와 가슴을 눌렀다. 삶은 종종 가장 씩씩한 사람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맡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웃음에 속아 안심하는지도 모른다.



술 취한 덤프트럭 그것도 오전 9시 교통사고라고 했다. 교통사고라는 말 한마디가 삶의 모든 문장을 지워버렸다. 아직 중년을 갓 넘긴 나이이고 철학서를 읽고 토론하던 우리 크루의 한 사람, 고3 논술을 책임지던 유능한 논술학원 원장이었다. 학원을 성실히 이끌며 확장해 가던 사람인데, 무엇보다 남편과 두 아들은 아직 학생이고 그 식구들의 삶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었다. 장례식장에 모인 이들의 놀란 숨결은, 남겨진 세상이 감당해야 할 공백의 크기를 말해 주고 있었다.



12월, 한 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앞두고 맞이한 이별이라서 더 잔인했다. 그녀와 함께한 13년의 시간이 한 장의 종이처럼 멈춰 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겨울 햇살은 겨울답지 않게 유난히 따뜻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졌다.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을 맑은 하늘에 써 두고 간 듯했다.



삶은 언제나 유한하고, 그래서 더 다정해야 한다는 오래된 진리를 자주 잊는다. 곁에 있는 동안 충분히 묻고, 충분히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단순한 철학을 이별 앞에서야 겨우 배운다. 인간관계에서 생각을 서로 나누며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이는 사실 몇 안된다. 그런 관계는 사랑이다. 그건 친밀한 가족과 또 다른 깊은 사랑의 관계다.



'겨울 하늘은 그리도 맑은데...' 눈물이 차오른다. 불을 다 태우고 재만 남았을 무렵,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떠나는 이를 배웅하는 시간은, 남겨진 이들이 삶을 다시 붙드는 연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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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사람아, 정말 떠나는 건가요~'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했던 13년을 꼭 기억할게요. 당신이 가르쳐 준 것은 지식 나눔뿐이 아니라, 밝음 뒤에 숨은 온유와 성실, 그리고 곁을 따뜻하게 하는 사랑이었으니까요. '잘 가요, 나의 사람아' 당신의 그 맑음은 우리 크루 모두에게 남아 있고, 기억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