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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찬바람은 설렘이 있다

겨울 날씨답게 공기가 유리처럼 맑고 차갑게 폐부를 스친다

by 현월안




겨울 날씨답게 아침 공기가 유리처럼 맑고 차갑게 폐부를 스친다. 겨울이 시작되었다. 겨울 찬바람은 묘한 셜레임을 준다. 같은 겨울 찬기를 느끼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짓는다. 어떤 이는 알싸하게 설레는 계절의 첫 장을 읽고, 또 다른 이는 두터운 옷깃을 한 번 더 여미며 마음까지 움츠러든다. 길가의 은행나무는 금빛 외투를 거의 벗어 냈다. 가지는 앙상하지만, 그 소박한 적요 속에 계절을 받아들이는 당당함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마저도 늦가을의 마지막 아름다움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더 깊은 추위의 공백처럼 느낀다. 세상에는 늘 같은 풍경이 다른 시가 되고, 같은 온도가 다른 마음이 된다.



사람 사이의 대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쪽은 걱정된다는 마음을 건넸는데, 상대는 그것을 간섭이라 듣는다. 누군가는 배려로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는 성가신 것으로 느껴지고, 위로의 손길이 때로는 개입의 손길처럼 거칠게 다가온다. 말은 하나인데, 마음이라는 렌즈를 통과하는 순간 수십 개의 결로 분해된다. 같은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각자의 감정선은 언제나 조금씩 빗겨 난다. 종종 나와 상대가 같은 자리에서 세상을 본다고 믿지만, 실은 서로 다른 높이에서 다른 방향에서 세상의 단면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세상은 끊임없이 다양한 해석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무심히 넘긴 사소한 일로 누군가는 하루가 흔들리고, 내가 흘려보낸 풍경은 누군가의 카메라 속에 소중히 저장된다. 서로의 마음은 겹쳐질 듯 가까우면서도 닿을 듯 말 듯 거리감을 유지한다. 그러나 어긋남의 틈 사이로 상대의 마음을 읽게 된다. 사람은 마음이 같은 방향으로 향할 때보다, 조금 어긋났을 때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려 애쓰는 존재다.



오늘 기온이 큰 폭으로 내려갔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겨울을 먼저 알아차린다. 해마다 반복되는 계절인데도 추위는 늘 처음처럼 낯설다. 삶에서도 그렇다. 이미 여러 번 맞이한 겨울인데도, 닥쳐올 때마다 늘 새롭고 늘 차갑다. 하지만 살아가는 일은 그 추위를 건너는 반복의 삶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겨울을 품고 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걸음을 뗀다. 겨울을 이기는 건 두꺼운 외투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의 작은 온기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와 경제, 정치, 세계의 온기는 점점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온다. 누구는 일상의 불안을 말하고, 누구는 미래의 냉기를 걱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차가운 현실이 닥친다 해도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온기, 곁을 지켜주는 정은 어떤 난방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서로의 상처 치유는 마음을 데워주는 관계로 살아간다. 혹독한 계절일수록 말 한마디와 따뜻한 눈빛과 다정히 건네는 손길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내는 온기가 된다.



사람에게만 있는 정,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에게 나누어 써야 하고 또 그것이 보이지 않는 따스함이다. 그 온기는 계산된 온도가 아닌, 서로를 향한 마음의 방향으로 데워지는 온기다. 때로는 그 온도가 미약해 보일지라도, 그 미열은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은 촛불 하나가 거대한 방을 다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어둠을 밀어내는 시작이다. 사람의 정 또한 그렇다. 그 작은 온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다시 잇고, 또 혹독한 겨울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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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길어 보이지만 어느 순간 물러간다. 나무의 앙상함도 어느새 봄을 준비하는 침묵일 뿐이다. 모두가 건너는 겨울 역시 그러할 것이다. 차가운 바람과 얼어붙은 거리 사이에서 서로의 존재를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고 조금 더 조심스레 말하고, 조금 더 따뜻하게 걸음을 맞추다 보면, 새 봄은 반드시 찾아온다. 그리고 그 봄은, 혼자서는 맞이할 수 없는 계절이다. 사람이 사람을 통해 건너온 겨울 뒤에 존재하는 따뜻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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