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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들 어렵다고 말한다

세상은 요란스러울 만큼 밝고 화려하다

by 현월안




요즘 세상이 유난히 무겁다. 세계 경제도, 국내 사정도, 생활 곳곳에 스민 불안이 온도를 잃은 공기처럼 식어 있다. 그래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다는 말을 습관처럼 흘린다. 그 말의 결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릿해진다.


살다 보면 삶의 주변도 그렇고 몸도 마음도 나이를 더해가면서 제법 몸 여기저기 경고등이 켜진다. 한 번 상한 상처는 작은 틈에 따라 휘청인다. 그럼에도 마음만큼은 힘들다는 말을 붙이지 않으려 한다. 하루아침 달라진 것도, 세상이 갑자기 만만해진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나를 움직이는 작은 시간들이 은근하게 느껴져서다.



힘들다는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살아간다는 일 자체가 원래 고달프고, 인생이라는 길이란 본래 조금은 험하고 거친 법이라는 걸 마음 한구석에 접어두고 살아와서이다. 고통이 특별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고통이 삶의 평범한 질감이기 때문에, 그것을 철학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고달프다고 너무 쉽게 말할 필요도 없이, 그저 묵묵히 내 삶의 결을 따라간다.



지인들은 글을 쓰는 나를 보며 그래도 '행복하지 않아?'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글 쓰는 일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유유자적이 아니다. 취미도 오락도 아니다. 글쓰기는 노동 중의 노동이며, 육체노동 못지않은 중노동이다. 한 문장을 건져내기 위해 마음속 깊은 곳을 발굴하고, 오래 묵힌 생각의 돌을 들어 올려야 한다. 손끝이 아니라, 영혼의 힘줄로 쓰는 일이니 고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내가 이 힘겨움을 행복이라 오해받는 이유는, 행복하게 글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위안을 주는 맑은 빛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단함은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 비교와 경쟁의 보이지 않는 그늘에서 생겨난다. 상대적 빈곤감, 박탈감, 뒤처진다는 조급함, 이런 감정은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그렇기에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만큼은 그런 것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 그것이야말로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는 출구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삶은 유일하다. 내 존재는 대체 불가능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값지다. 종종 다른 사람의 속도와 나의 속도를 비교하며 초조해하고, 조금만 뒤처지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다그친다. 하지만 조금 늦으면 어떠한가. 조금 느리면 또 어떠한가. 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저마다의 시간대 위에서 자기만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과하는 고유한 여정이다. 누구의 계절도 누구의 날씨도 같지 않다.



세상은 요란스러울 만큼 밝고 화려하다. 빛은 넘쳐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내면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 화려한 외면이 짙어질수록 마음의 그림자는 더 길어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바깥의 빛이 아니라, 더 깊은 내 안의 빛이다. 밖이 아닌 안에서 빛을 내야 한다. 겉이 아닌 속에서 은근히 환한 빛. 그것이 내명(內明)이다.



내명을 지닌 사람은 주변의 풍랑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남의 성공이 남의 빠름이, 또 내 느림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를 닦아가는 과정에서 삶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미세한 온기를 만난다.



요즘 세상은 모두 힘들다. 저마다의 사정과 각자의 짐이 있다. 그럼에도 삶은 어려운 시기를 반드시 건너가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견디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때때로 잊힐 뿐이다. 지금의 고단함은 못나서가 아니다. 남보다 뒤처져서도 아니다. 시대가 유난히 거칠고, 시간을 버텨가는 일이 원래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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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천천히 가도 좋다.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 자신을 믿으면 길은 계속 열릴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 사실 하나를 확인할 수 있을 때, 마음은 다시 밝아진다. 고단한 시대에도 서로의 온기로 길을 만들고 그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유이고, 살아가는 힘이다 부디 모두가 내면에서 은근히 타오르는 작은 불씨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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