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화면 속 세상은 분주하다

세상 속도에 따르는 말의 품격

by 현월안




지금은 작은 핸드폰 화면 안에서 세상의 모든 풍경을 본다. 뉴스를 읽고 사람들의 삶을 듣고, 또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눈다. 그러나 그 감정은 너무 빠르고 너무 쉽게 소비된다. 한 줄의 문장과 한 번의 클릭으로 누군가의 하루가 흔들리고, 누군가의 인생이 낙인처럼 남는다. 세상은 말로 움직이지만 요즘의 말은 너무 쉽게 흘러간다.



한때는 말이 무거웠다. 말 한마디는 그 사람의 품격이었고, 침묵과 사려 깊음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응이 빠르다.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시대다. 그래서 모두가 소리치는 듯하다. 더 자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그러나 그 소리가 커질수록 세상은 더 혼잡해지고 마음은 더 멀어진다.



화면 속 세상은 언제나 분주하다. 누군가의 실수는 순식간에 이슈가 되고, 그 아래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쏟아진다. 제목만 보고도 분노가 터지고, 사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결론이 내려진다. 손이 앞서고 이성은 한참 뒤에 따른다. 생각이 숙성되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움직인다. 그렇게 쏟아진 말은 다시 또 다른 말에 부딪혀 충돌을 일으킨다.



언제부터 이렇게 급해졌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휴대전화 알림을 확인하고, 새 댓글이 달렸는지 누가 반응했는지를 살핀다. 그 짧은 순간에도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확인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음 소식으로 다음 화젯거리가 밀려오면 방금의 감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남는 것은 공허함 뿐이다.



말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마음의 깊이는 얕아진다.
생각은 숙성될 시간을 잃고, 감정은 여과되지 않은 채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국물을 식히지 않고 그대로 삼키는 것과 같다. 처음엔 뜨겁고 강렬하지만, 또 속을 데우고 남는 것은 불편함 뿐이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세상을 계산하고, 분석하고 예측한다. 그 덕분에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멈추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멈춘다는 것은 생각의 호흡을 되찾는 일이다. 누군가의 말에 즉각 반응하기 전에, 그 말의 이면을 한 번쯤 바라보는 일. 그 속에 어떤 사정과 마음이 깃들어 있는지, 짧은 문장으로는 다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연결해 보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댓글을 단다는 것은 또 하나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대화가 서로를 이해하게 만들 수도 있고, 서로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말하고 있지만, 그 거리에도 온도가 있다. 따뜻한 말은 화면을 넘어 사람의 마음에 닿는다.



예의는 상대의 존중이다. 보이지 않아도 이름이 없어도, 나누는 말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세상의 모든 온라인 공간은 사람과 사람의 공간이다. 그러니 댓글은 관계다. 그 관계가 건강하려면 말의 온도부터 달라져야 한다.



누군가는 요즘 세상은 너무 차갑다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을 차갑게 만드는 건 첨단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다. 그냥 지나가다 한마디 했을 뿐이라는 무심함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식혀 간다. 또 한마디의 따뜻한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살릴 수도 있다.


인터넷 화면에 달린 모든 댓글의 작성자가 이름으로 바뀐다면 어떨까. 자신의 이름으로, 그 말을 쓴다면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문장을 고쳐 쓰거나, 혹은 침묵할 것이다. 그건 부끄러움이 아니라 인간다움이다. 부끄러움이 사라질 때 세상은 더 위험해진다.



삶은 대화의 연속이다. 사람과 사람, 나와 세상 사이의 끝없는 대화다. 그 대화가 아름답게 흐르기 위해서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앞서야 한다. 모든 문장에 다정함을 담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기본은 가져야 한다.
그것이 시대의 댓글 예절이고 말의 철학이다. 세상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져도, 생각의 속도만큼은 사람이 결정할 수 있다. 말보다 마음이 앞서고, 반응보다 사유가 먼저인 세상. 그런 세상은 기술의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세상일 것이다.


-~-~-~-~==~-~-ㅌ


오늘도 스크린 앞에서 누군가의 글을 본다. 그 글 사이에 담긴 마음을 읽으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린다.
말에는 온도가 있다. 나는 오늘 어떤 온도로 말하고 있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