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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고 너는 안 되는

삶은 길고 인연은 귀하다

by 현월안




약속 시간은 믿음이고 예의다. 서로를 향해 내미는 작은 배려의 손짓이다. 지인과 셋이서 점심을 먹기로 한 약속이 있었다.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한 나와 지인은 나머지 한 사람이 곧 도착하리라는 생각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같은 메뉴를 시켜 놓고, 따뜻한 국물의 온기가 입 안에 번질 즈음 저 멀리서 지인이 숨을 몰아쉬며 뛰어왔다. 급한 일이 생겨서 늦었다며 그녀는 숨을 고르고 앉았다, 우리는 "괜찮아"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는 가볍게 스치는 생각은 한발 늦는 그녀의 습관이었다.



며칠 후, 다시 같은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엔 다른 지인이 늦었다. 병원에 급히 다녀왔다는 말을 건네며 미안함을 보였고, 모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지난번에 매번 늦었던 사람이 이번에 늦은 이에게 웃으며 말한다. "다음엔 좀 일찍 다녀" 농담 같았으나, 그 말끝에 묘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정작 본인은 늘 같은 실수를 했던 그 자리에서, 가벼운 웃음 속에 숨은 불편함이 피어올랐다. 듣는 이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마음 어딘가에 얇은 금이 그어졌다.



타인을 바라보는 눈과 나를 향한 눈이 다를 때, 관계는 흔들린다. 때때로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자신을 감싸면서도, 타인을 향해서는 가을 서리처럼 매섭다. 춘풍추상(春風秋霜), 남에게는 따뜻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라는 오래된 지혜는 거꾸로 쓰이기 쉽다. "나는 사정이 있었지만 너는 조심했어야지"라는 말 없는 잣대가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다.



인간관계는 큰 사건으로 깨지지 않는다. 대부분 아주 사소한 틈에서 무너진다. 작은 농담 하나가 또 늦은 시간을 대하는 의식 하나의 감정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다시는 예전처럼 웃지 못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사람 마음은 유리잔과 같아서 쉽게 금이 가고, 한 번 생긴 균열은 아무리 지우려 해도 희미한 흔적을 남긴다.



인간은 참 연약하다. 때로는 바쁘고 또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마음이 좁아진다. 말은 언제나 가볍지만, 마음에 닿으면 무겁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은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웃기 위한 말이 상처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한 침묵이 외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관계는 마음의 균형이다. 내가 조금 더 기다려주고 이해하려 하고, 더 따뜻해지려고 애쓰는 시간 안에서 단단해진다. 나만 괜찮고, 너는 안 된다는 이중 잣대는 답답한 마음의 방에 가두게 된다.



삶은 길고 인연은 귀하다. 같이 마주하고 같은 시간을 나누는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때로는 늦을 수도 있고, 때로는 말이 서툴 수도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그럴 수 있어'라는 한 줌의 이해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품어줄 때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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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웃으며 기다리는 여유를 보인다면 사람 사이의 온도는 따뜻해진다. 그리하여 작은 행동이 큰 이별이 되지 않고, 작은 배려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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