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면서 또 인간관계에서 말이 차지하는 무게
얼마 전 오랜 지인들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늘 분위기를 살리는 재주가 있고, 말 한마디로 모임의 온도를 바꾸는 그녀가 있다. 그날도 그녀는 늘 하던 대로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녀는 우연히 다른 이가 메모하는 모습을 보고 "글씨를 발로 쓰네" 하며 핀잔을 주었다. 평소 같으면 모두가 웃어넘겼을 농담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글씨를 쓰던 이가 표정이 달라지고 심상치 않았다. 흔히 사람의 마음은 계절처럼 변덕스럽고, 그 변덕이 때로는 제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같은 말도 어느 날에는 부드럽게 스며들고, 또 어떤 날에는 마음 한가운데에서 묵직한 상처가 된다. 사소한 표현 하나가 중심을 잃은 발처럼 마음의 균형을 흔들어 놓는다. 결국 두 사람은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났다.
종종 세상을 살다 보면 오랜 시간 함께 한 친근한 곳에서 어떤 이는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가볍게 던진다. 오래 알고 지낸 인연이라고 해서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관계일수록 더 약해지기도 한다. 서로의 과거를 너무 많이 알고, 그 속에 쌓여 있는 작은 상처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관계의 편안함은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그 흐릿함 속에서 무심한 말 한마디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흐른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작은 무례를 허락하고, 그 무례는 균열이 된다.
그래서 관계의 격은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는가 보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사소한 농담이 서로에게 닿는 깊이가 다르고, 같은 말이라도 다른 의미가 된다. 하지만 오래된 인연이 품을 수 있는 있는 것은 손을 내미는 배려다. 그리고 그 손을 붙잡아주는 따뜻함이다.
인간은 언제나 땅을 딛고 중심을 잡는다. 균형 있게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내면에 가지고 있다.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다. 가까울수록 더 섬세한 배려가 필요하고, 오래된 인연일수록 더 따스한 존중이 필요하다. 때로는 서로의 힘이 되어주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누군가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균형을 잡아주고,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는 보이지 않는 지지. 그것이 오래된 관계가 주는 깊은 신뢰다.
삶을 돌이켜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지지해 준 사람들이 많았다. 기꺼이 한 발 뒤에 서서 기다려 주는 일, 말없이 옆에 서서 균형을 함께 잡아주는 일, 흔들리는 순간에도 괜찮다고 조용히 곁을 내어 주는 일은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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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사랑도 믿음도 거창한 말보다 작은 균형의 반복이다.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서로 지탱해 주고, 넘어지지 않게 균형이 되어주는 일. 그렇게 조용하고 단단하게 이어지는 연결이야말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삶을 데우는 연결이다. 언젠가 먼 길을 돌아보게 될 때, 따뜻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아마 누군가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