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또 저문다
한 해가 저문다
기쁨이 움트던 순간도,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날들도
그리 가볍지 않았던 시간들이
서서히 빛을 거둔다
기쁨으로 뜨거웠던 심장,
굴욕으로 얼어붙던 자존심,
어설픈 좌절에 비틀거리던 발걸음,
그리고 욕심에 지쳐 숨 고르던 내면까지
모든 진동을 끌어안은 채
한 해가 조용히 저문다
한입 가득 해를 베어 물던 시절처럼
빛을 들이마시던 바쁨과
내 속에서 자라난 희망의 새순은
때로 이상을 삼키고,
또 허전한 욕심에
살아 있음을 배운다
해가 저문다
무심한 듯 반복되지만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 해가,
이제, 모든 시간에서 잠시
여기까지 날 밀어낸 시간과
또 이끈 손길을
같이 바라보아야 한다
이제는
더는 지탱하지 못하는 무게,
더는 전진시키지 못하는 생각들,
그 모든 과적을
이젠 조용히 내려놓아야 한다
갈피를 잡지 못해
알면서도 내놓았던 잘못들,
몰라서 흘러가게 만든 과오,
모두 받아들여
한 줄씩 지워내야 한다
헐거워진 마음의 결
노여움으로 잃은 눈빛도,
얼룩졌던 흔적도
이제는 손바닥의 온기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독여야 한다
한 해가 또 저문다
저무는 것이 순리라면
떠오르는 것, 또 순리다
어둠이 지나고
밝음이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림 속에서
나를 다시 데우리라는
온기를 믿는다
시간은 나를 떠나지만
다시 돌아올 여백을 남긴다
그 여백을 품는 일이 삶이고,
여백을 견디는 일이 철학이다
저무는 시간도, 떠오르는 시간도,
모두 살아 있는
순환이고 연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