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던 종갓집의 가마솥 팥죽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어
시간이 숨을 멈춘 듯한 동짓날,
집안사람들은 불을 지피고
종갓집 종부 엄마는 붉은팥을 씻었다
어둠을 이기기 위해서
또 어둠을 함께 건너기 위해서였다
유년의 친정 종갓집 마당에는
아침부터 끓던
팥죽이 넘칠 듯 차오르던 가마솥,
바삐 오가던 엄마의 발걸음
그 모든 분주함은
희생이고 사랑이었다
펄펄 끓는 가마솥 속에서
팥은 오래 끓으며
서로의 모서리를 닳게 했다
딱딱했던 마음은 풀어지고
알갱이는 부서지고
하나의 온기가 되었다
동지는
방향을 바꾸는 날,
빛이 다시 걸음을 떼기 전
가장 낮은 곳에 세상의 이치를 두는 시간,
그 옛날 팥죽은
음식이기 전에 삶이었다
누군가에게 건넨 팥죽 한 그릇은
긴긴밤의 무탈과
밤새 안녕을 묻는 온기,
새알심을 세며 시간을 입에 넣었다
한 살을 더 먹고
세상을 견디고
조금 더 따뜻해지는 법을 배웠다
사람이 많을수록
맛은 깊어졌고,
그릇이 비워질수록
마음은 채워졌다
동짓날은
삶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
혼자가 아닌
나누며 건너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종갓집의 의례는 간소해지고
가마솥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펄펄 끓던 붉은 팥죽을 떠올린다
한 그릇의 온기 속에
시간의 철학이 있고,
동그란 새알 속에
서로를 살게 한 사랑,
가장 긴 밤이 지나면
빛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 빛이
따뜻할 수 있었던 것은
어둠 속에서
함께 먹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