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간 자리

저만치 붉은 해가 다시 떠 오른다

by 현월안



한 해가 또 저문다
바람이 스쳐간 자리마다
시간이 어느 틈에 얇게 눕는다
크게 이룬 것도, 반짝이는 것도 없지만
무탈히 지낸 것만으로도
이미 은은하고 따스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조금 모자란 나의 그림자일 뿐,
그마저도 내 삶의 질감이니
쓰다듬고 다독인다


삶은 불꽃처럼 타오르다가도
노을처럼 잔잔하고
물결처럼 또 흔들리고
한없이 너그럽기도 하고 또 부드럽다
때로는 출렁이다가
또 바람이 잦아든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지나온 해의 시간이다


한 겹, 또 한 겹
시간은 조용히 내려앉는다
돌아오지 않을 날들이라 더욱 아릿하고,
가지런한 빛살처럼 아련하다
기쁨도 약간의 어긋남도
한 해를 함께 살아낸 나의 이다


영겁의 세월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건만
안달하는 것은 마음뿐이다
태양은 해가 뜨고 지는 일을 멈추지 않는데
늘 뒤돌아 아쉬워한다

그래도
살아냈던 시간만큼
새날 새로움으로 또다시 맞이한


저만치 붉은 해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살아 있음은 언제나
저문 자리에서 새 빛을 틔우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