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설렘

극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by 현월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기대와 설렘이다. 불이 꺼지는 순간, 저마다의 삶에서 잠시 빠져나와 잠시 아늑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그 어둠은 행복한 집중이다. 휴대전화의 진동도, 일상의 소음도 닿지 않는 공간에서 숨을 고른다. 스크린 앞에 앉아 영화관에서만 느끼는 만족이다.



영화관 대형 스크린에 첫 장면이 펼쳐질 때의 그 묘한 설렘이 있다. 누군가는 웃음을 삼키고, 누군가는 눈가를 훔친다. 서로 말을 섞지 않아도 안다. 같은 장면에서 숨을 멈추고, 같은 대사에서 가슴이 흔들린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저마다 다른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묘하게 같은 온도를 품고 있는 이유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순간의 희열은, 혼자만의 만족이면서 누군가와 함께였다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런데 걸작을 만들던 미국 영화사 '워너브라더스'가 넷플릭스에 팔렸다고 한다. 1923년 설립된 워너브라더스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슈퍼맨, 배트맨은 물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명작을 제작을 했던 거대 영화사다. 최근에 OTT 넷플릭스가 720억 달러(약 106조 원)에 인수했다. 앞으로는 새 영화가 나오더라도 극장이 아닌 OTT에서만 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아마도 앞으로는 영화관을 찾는 일은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그리고 혼자 내 방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 OTT로 영화를 볼 때 더 많은 콘텐츠를 보게 될 테고 인간은 점점 외로워진다. 영화는 여전히 만들어질 것이다. 더 빠르게 더 정교하게 만들어질 것이다.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고 또 낯선 이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공공의 장소다. 말없이 웃음이 전염되고, 침묵이 전염되는 공간이고 누군가의 흐느낌이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곳이다.



기술은 인간을 돕기 위해 더 첨단으로 변해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더 혼자 두는 쪽으로 진화해 간다. 더 많은 연결 수단을 가졌지만, 같은 공간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화면을 바라보며 같은 영화를 보고도, 더 이상 서로의 숨결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본래 이야기로 이어지는 존재인데, 그 이야기를 함께 듣는 자리마저 사라질 때 외로움은 더 빠른 속도로 질주할 것이다.



외로움은 조용히 온다. 그런데 붐비는 도시 한가운데서도, 수천 개의 콘텐츠가 넘실대는 화면 앞에서도. 때로는 낯선 사람의 팔꿈치가 스치고, 같은 장면에서 웃음이 터질 때, 때로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감각으로 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느끼는 문화는 모두에게 추억이다. 그런데 영화관 마저 사라지는 것은 인간이 점점 더 외로워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기술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든,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사람은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같은 장면에서 울고 웃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극장은 형태를 바꿀 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더 작아지고 더 특별한 방식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삶의 철학은 선택의 순간에 숨어 있다. 편리함을 택할 것인가, 불편함 속의 온기를 지킬 것인가. 혼자만의 안전한 즐거움에 머물 것인가, 타인의 숨결이 스며드는 약간의 불안을 감수할 것인가. 영화관에 찾는다는 것은, 아직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조용한 손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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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불이 꺼질 때, 같이 앉아서 보던 묘한 설렘을 기억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 앉아서 서로를, 말없이 의지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두리번거리던 기억.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개인화되어도, 인간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