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빛깔
겨울의 그림자가 바람결에 묻어난다. 아침마다 유리창에 엷게 서린 김이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그래도 완전한 겨울 답지 않게 겨울 햇살이 포근하다.
그리고 부쩍 눈에 띄는 것은 발길 닿는 곳마다 상가 유리창 너머로 임대 문의라는 붉은 글씨가 스산하게 나부낀다. 쓸쓸히 불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그 글씨가 더 쓸쓸하게 보인다.
상가 주변 사람들로 붐비던 거리의 표정이 조금은 달라졌다. 한때 불빛이 가득하던 곳인데 하나둘 불이 꺼지고, 셔터를 내린 채 빈 공간이 된 상가가 눈에 띈다. 폐업을 앞둔 주방용품 가게 진열대에는 땡처리라는 붉은 가격표가 붙어 있다. 그 글씨는 마치 마지막 인사처럼 절박하다. 코로나 때도 이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의 표정 속에는 어딘가 모를 불안의 그림자가 들어 있다.
뉴스에서는 올 한 해 수백만 명의 자영업자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 뒤에 남겨진 것은 중고 물품뿐이다. 남겨진 물건은 또 중고 물품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 누군가의 실패가 또 다른 누군가의 거래가 된다. 삶이란 어쩌면 이런 모순으로 유지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끝이 또 다른 시작이 되고, 또 누구의 한숨이 누군가의 기회가 된다. 하지만 그 어떤 논리로도 지금의 고단함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인간의 삶은 참 공평하지 않다. 누구는 하루 벌어 하루 살며 버티고 누구는 흐름에 휩쓸려 무너지고, 또 다른 누구는 그 와중에도 작은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그래도 난 괜찮아라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다들 사정이 있고 다들 상처가 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보여도 속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삶의 무게에 흔들린다.
겨울은 삶의 현실을 더 드러내는 계절이다. 모든 화려함이 벗겨지고 본래 모습만 남는다. 나무는 잎을 떨구며 자신을 가볍게 만들고 사람은 잃음을 통해 자신을 다시 세운다. 폐업한 가게의 셔터 앞에서도 어쩌면 누군가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삶은 그렇게 냉정하면서도 어딘가 따뜻한 구석이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겨울이 찾아오고, 그때마다 마지막 남은 체온으로 버틴다. 어떤 이는 가족의 사랑으로 버티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신념으로 그 추위를 견딘다.
겨울의 거리 한복판에서 문득 멈춰 서면 찬 바람 속에도 따스한 기운이 섞여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이고 또 길모퉁이의 자선냄비 소리가 들리고, 또 누군가의 기부 소식이 들린다. 그 따뜻함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고 서로를 향한 작은 온기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서로가 서로의 체온이 되어주고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삶은 종종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불공평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미묘한 균형이 숨어 있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더욱 단단해지고, 추위가 매서울수록 온기의 소중함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끝내 사람은 다시 살아낸다. 넘어지고 울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삶은 고요한 깨짐의 연속이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겨울 찬바람이 세차게 몰아칠수록 사람의 마음은 따뜻함을 찾게 된다. 하지만 따뜻함은 멀리 있지 않다. 하루의 피로를 덜어주는 한 잔의 커피와 가족의 위로 한마디가 겨울을 견디게 만든다. 삶은 참 묘하다. 잘 다루고 다독이면 길이 생기고 서툴게 대하면 금세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그 나락조차 완전한 끝은 아니라는 것이다. 삶은 또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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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아무리 혹독하게 춥고 고달프더라도, 또다시 마음의 온도를 데우고 새로운 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