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의 끝자락에서 보이는 것들

새해가 다가온다

by 현월안




어김없이 12월의 끝자락이다.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이 마음 앞에 놓인다. 새해를 시작하며 '건강하시길, 평안하시길' 하고 건넸던 인사가 아직 온기 있게 남아 있는 듯한데, 어느새 시간이 지나버렸다. 연말의 시간은 늘 그렇다. 손에 쥐려 하면 이미 빠져나가 있고 뒤돌아보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듯하다. 마지막 끝자락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가.



송구영신,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글자는 익숙하지만, 그 속에 담긴 결은 가볍지 않다. 해를 넘긴다는 것은 감정의 밀도를 깊이 통과하는 일이다. 기쁨과 기대와 켜켜이 쌓인 시간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연말은 보내는 연습을 하는 계절이다. 어떤 일은 끝내 매듭짓지 못했고, 어떤 관계는 여전히 이름 붙이기 어렵다. 더 잘할 수 있었던 장면들이 떠오르고, 미처 건네지 못한 말들이 마음을 붙든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미완이다. 모든 것을 완벽히 정리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때 필요한 것은 받아들임이다. 끝맺음이 불완전해도 방향이 흔들렸어도, 그 시간을 견뎌냈으니 얼마니 다행이던가.



일 년의 끝자락에서 보면 사람과의 관계도 가까워졌다고 믿었던 사이가 소원해지기도 하고, 무심히 스쳐 지나간 인연이 오래 남기도 한다. 작은 오해와 서운함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기억이 살포시 떠 오른다. 하지만 관계는 과정 속에 있기에 함께 웃었던 순간과 서로를 버텨주었던 시간, 말없이 곁을 지켜주었던 배려까지도 모두 기억 저편에 아른거린다. 연말은 그저 감사와 이해의 눈으로 한 번 더 바라보는 시간이다.



이제 곧 새해가 다가온다. 새해는 흔히 새로운 시작이라 불리지만,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시간의 연결이다. 삶은 큰 결심보다 작은 것에서 더 많이 바뀐다. 어제보다 조금 더 천천히 익숙한 일상에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과 무엇보다 나 자신과 조금 더 좋은 관계를 맺어보려는 조심스러운 시도가 아닐까 싶다. 그런 미세한 움직임이 시간을 새롭게 만든다. 새해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되는 날이기보다 같은 삶을 다른 시선으로 잘 다독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삶의 일상을 흔들었고 불안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시간을 살아냈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누군가를 걱정하고, 또 누군가에게 기대며 시간을 건너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올 한 해는 충분히 다행이다. 그러니 아쉬움이든 기쁨이든 모든 기억에서 잘 다독여야 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한다. 조심스럽게 더 많이 가지겠다는 욕심보다, 이미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생각이다. 관계 속에서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덜 판단하며, 삶 앞에서 조금 더 겸손해지겠다는 소망으로 새 시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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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늘 앞서 가지만, 마음은 선택할 수 있다.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놓아줄지, 어떤 얼굴로 내일을 맞이할지. 연말이 되어서 조용히 내게 묻는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시간을 건너가고 있는가. 그 물음을 품은 채, 사랑을 조금 더 챙겨 들고 다음 해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