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가는 철학

커피 한 잔과 마주하는 것은 달콤한 설렘이다

by 현월안




커피 한 잔을 내리며 기다리는 시간은 달콤한 설렘이다. 겨울의 공기 속에서 갓 추출된 커피는 하얀 김을 피워 올리며 따스하게 전해진다. 검은 액체는 뜨겁고 격정적이며, 커피잔 속에 미세한 파동을 보는 것도 재미다. 그러나 그 생생하게 살아있는 따스함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잔에 담기는 순간부터 이미 시간은 흐른다. 식어간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그 맛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식어갈 것인가의 문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계 위를 움직이는 숫자일까, 아니면 내 안에서 흘러가는 의식의 결일까. 커피를 마시는 일은 그 흐름을 가장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순간 중 하나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향을 먼저 맡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맛을 상상하는 기대이고 뜨거운 것이 혀끝을 스치는 순간은 감각이다. 커피를 한 모금 삼킨 뒤 남는 여운을 더듬는 일은 이미 지나간 시간을 붙잡으려는 기억이다. 그렇게 커피 한 잔으로 된 시간을 내 몸 안으로 흘려보내는 조용한 시간이 된다.



커피의 시간은 점점 변한다. 뜨거운 온도에서는 미각보다 섬세한 향과 맛은 아직 그 속에 숨어 있다. 뜨거움이 조금 가라앉으면 맛의 균형을 이룬다. 산미는 화사하게 풍기고, 단맛은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며 향은 공기와 섞여 한층 깊어진다. 쓴맛은 뒤로 물러나고 조화로운 질서를 이룬다. 그 짧은 순간이 커피는 가장 맛있는 시간이고 맛의 풍미를 준다.



그러나 순간은 붙잡을 수 없다. 커피는 그저 시간이 흐르며 모습을 바꿀 뿐이다. 다만 그 변화를 얼마나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에 따라 한 잔의 깊이에 닿게 된다. 서둘러 마시면 뜨거움만 남고, 조금 미루면 향은 사라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식어가는 찰나를 알아보는 감각의 알아차림과 그리고 그 순간에 머무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다.



삶도 그렇다. 늘 가장 뜨거운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한다. 젊음, 사랑, 성공...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커피처럼 식어간다. 식어간다는 것은 그 과정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얼마나 오래 바라볼 수 있느냐다. 뜨거움이 지나간 자리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맛의 균형, 욕심이 가라앉은 뒤에야 보이는 진짜 맛. 삶 역시 그런 순간에 가장 나 다운 향기를 낸다.



사람들이 커피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히 각성 효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커피 한 잔에는 기다림이 있고, 변화가 있으며, 사라짐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담겨 있다. 매일 커피를 마시며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모든 것은 머물지 않지만, 그 흘러가는 과정 속에 충분히 사랑할 만한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식어가는 것들은 모두 어딘가 슬프지만, 바로 그 식어감 속에 가장 깊고 따뜻한 맛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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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아는가' 커피는 아무 말 없이 그 질문을 건넨다. 커피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을 마신다. 그리고 순간 식어가는 시간과 또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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