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미술관에서는 시간이 다른 방식으로 흐른다
도시는 늘 바쁘다. 속도를 재촉하고 소음을 더하고, 오늘보다 내일을 더 재촉한다. 예술가에게 도시는 영감의 얻기도 하지만, 또 생각의 방해가 되기도 한다. 어디선가 들어오는 소음과 일정들은 집중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유는 분산되고 창작의 집중은 틈새로 밀려난다. 그래서 예술은 때로 도심을 떠나 숨을 돌릴 장소를 찾는다. 그 대안으로 찾는 공간이 요즘 폐교다.
학교로 사용하던 폐교는 시간의 흔적이 남은 장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운동장의 흙먼지, 분필 가루가 날리던 교실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한때는 미래를 준비하던 공간이었으나, 저출생과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역할을 마치고 비워졌다. 그러나 비워진 곳의 폐교는 이제 많은 예술가들이 숨 쉬고 있다. 기능을 잃은 공간이 아닌, 오히려 가능성이 가장 넓게 열려 있는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폐교를 활용한 예술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은 여유다. 넓은 교실과 강당과 운동장, 넓은 공간은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캔버스를 마음껏 펼칠 수 있고, 설치미술이 숨 쉴 자리를 얻는다. 무엇보다 경제적 부담이 적다는 것은 예술가에게 장점이다. 생계를 위해 창작을 미루지 않아도 되고 그것은 예술이 가장 필요로 하는 조건일 것이다.
폐교의 또 하나의 선물은 고요한 자연환경이다. 대부분의 폐교는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에 자리하고 있다. 밤이 되면 별빛이 쏟아지고, 아침에는 안개가 들녘을 감싼다. 자동차 경적 대신 바람 소리와 새 울음이 하루를 연다. 자연은 말을 하지 않지만 예술가에게 가장 깊은 영감을 준다. 예술가는 그 침묵 속에서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
얼마 전 경기도 양평에 있는 한 시골 미술관을 다녀왔다. 지인이 운영하는 그곳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한 공간이다. 교문을 지나자마자 도시의 시간은 멈췄다. 전시실이 된 교실에는 그림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작품들은 경쟁하듯 소리치지 않았다. 그저 거기 존재하며, 보는 이의 마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술관 한편에는 작은 서점이 있었고, 그 옆에는 예쁘게 꾸며진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 같았다.
그곳의 공기는 투명하고 맑았다. 폐교 미술관에서는 시간이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오래된 나무 바닥은 발걸음을 늦추고, 칠이 벗겨진 창틀은 시선을 붙잡는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고, 인간의 삶 역시 그렇게 겹겹이 이어져 있음을 알려준다.
폐교의 변신은 예술가를 위한 것이고 그 지역에도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전시를 보러 온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마을을 걷고, 카페를 찾는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서 다시 사람들이 모인다. 어떤 지역에서는 폐교가 도서관이 되고, 경로당이 되며, 체육시설이나 문화센터로 쓰인다. 사라질 뻔했던 공간이 다시 공동체의 중심이 된다.
지난해 전국의 학교 폐교는 3955곳에 이르고, 그중 367곳은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다. 폐교의 고민은 또 하나의 질문이 된다.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가. 쉼과 사유가 공존하는 것을 만들어 갈 것인가.
양평의 그 폐교 미술관에서 오랜만에 충분한 만족의 예술을 느꼈다. 더 가져야 할 것도, 더 빨리 가야 할 것도 없었다. 자연과 인간, 예술과 일상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나란히 존재하는 풍경 속에서, 삶은 본래 이렇게 조용하고 따뜻한 것이었음을 떠올렸다. 폐교는 또 다른 문화의 시작이었다. 아이들의 배움이 떠난 자리에 예술이 들어오고, 예술이 머무는 곳에 다시 사람들이 모인다.
~~~~~-----==~---ㅂ
잔잔하고 쉼이 있는 공간, 폐교 미술관은 천국 같았다. 그것은 그리 화려하지도 않지만 넉넉하게 품어주는 여유만큼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공간 속에 남아 있는 묘한 기품이 있다. 자연과 인간은 언제나 서로를 필요로 해왔고, 그 사랑은 폐교를 품은 채 다음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