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 또다시 삶 위에

새해에 드는 잔잔한 감정들

by 현월안




겨울 찬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왜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달리고 싶어 질까. 몸을 밀어내는 힘 앞에서 오히려 맞서 보고 싶은 마음과,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확인하고 싶은 본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람은 한 방향으로만 불지 않는다. 바람은 또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달리하며, 인간을 시험하듯 지나간다. 결국 바람을 뚫고 나가기보다 바람에 의해 조금씩 방향이 바뀐 채, 예상하지 못한 자리로 흘러가며 살아간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곧게 나아가겠다는 의지는 자주 흔들리고, 계획했던 궤도는 미세하게 어긋난다. 그러나 그 어긋남 속에서 내가 얼마나 유연한지, 얼마나 견디는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만 드는 묘한 기분이 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변함없이 한 바퀴를 돌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순환에 의미를 붙여 끝과 시작을 만들어 낸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달력이 바뀌며 마음의 결을 새롭게 한다. 지나온 시간은 잊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걸어 둔다. 숫자로 가득한 달력은 시간 앞에서 느끼는 도구이고,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는 허락처럼 벽에 걸린다. 새 달력을 거는 일은 나에게 하는 약속이다. 아직 쓰이지 않은 날짜들 앞에서, 다시 한번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 보겠다는 다짐 말이다.



삶은 반복의 연속이다. 해는 매일 떠오르고, 계절은 약속처럼 돌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의 첫날이 특별한 이유는, 시간의 흐름을 단순한 연속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새해의 첫날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삶은 생각보다 무겁고,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지친다. 견뎌야 할 일들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거친 모습으로 삶 앞에 나타난다. 때로는 묵직한 심장을 안고 또 하루를 살아 낸다. 그것이 삶이고, 인간이 시간을 통과하는 일이다.



그러나 절망만으로 삶이 이어진다면, 그 긴 여정은 너무 무모해질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희망이라는 꿈이 필요하다. 새날이 시작될 때 새해가 시작될 때 본능처럼 희망을 떠올린다.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더라도, 인간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인간의 그 질긴 삶 안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어떤 부분이 있다. 세상의 규칙과 반복되는 좌절에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야성 같은 것. 그것은 다스려질 수 없고, 완전히 꺾이지도 않는다.



우주 만물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순환이다. 별은 탄생하고 소멸하며, 그 잔해로 또 다른 별이 만들어진다. 소멸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 인간의 시간 또한 우주 원리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흔히 매해 비슷한 일들을 반복하고, 비슷한 기쁨을 되풀이하지만, 완전히 같은 해는 단 한 번도 없다. 경험이 쌓이고 마음의 결이 달라지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같은 자리를 다시 지난다. 새해는 같은 궤도를 도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미세하게 다른 고도를 통과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빛은 언제나 고통과 함께 태어난다. 별이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빛을 낼 수 없듯, 인간 또한 삶의 강한 질감을 통과해야만 자신의 삶을 발견한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은 그래서 늘 같은 선 위에 놓인다. 좌절과 희망은 서로 등을 맞대고 매달려 있다. 하나를 떼어 내면 다른 하나도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다. 인간은 좌절을 통해 희망의 깊이를 배우고, 희망을 통해 좌절을 견딘다. 그런 모순을 이미 경험을 했고 그 경험 때문에 또 인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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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달력의 첫 장이 흔들린다. 달력의 숫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숨 쉬고 있다. 시간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엮어 다시 흐른다. 찬 겨울바람은 길모퉁이를 돌며 어느새 온기를 머금는다. 아마도 그것이 새해라는 이름의 감각일 것이다.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따숨. 그 온기를 믿으며 또다시 출발선에 선다. 바람의 방향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흔들리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가는 존재로서. 그렇게 시간은 다시 사람을 통과해 흐르고 그 흐름 속에서 또다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