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겨울바다라는 단어는 낭만이 깃들어 있다. 짙푸른 색의 깊이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의 길이. 어느 하나도 마음의 고요를 거스르지 않는다. 바다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풍경이고, 말없이도 사람을 부르는 장소다. 도시의 하루가 반복될수록 마음은 점점 건조해지고, 그때마다 가끔 바다를 떠올린다. 답답함을 씻어내고 싶을 때와 삶의 먼지를 털어내고 싶을 때,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향해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연말과 새해를 사이에 두고 가족들과 속초로 2박 여행을 했다. 겨울 바다를 굳이 찾아 나선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해돋이를 보고 또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시간과 그리고 겨울 차가움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다. 겨울 바다는 차갑다. 바람은 알싸하고 파도는 단단하다. 그러나 그 매서움 속에는 삶을 다시 깨우는 힘이 있다.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바람 앞에서 정신은 또렷해지고, 파도의 반복 앞에서 생각은 단순해진다. 바다는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진심의 풍경이다.
주문진항에서 우연히 조업을 마치고 들어오는 배들을 보았다. 양미리가 그물을 찢을 듯 가득 담겨 항구로 들어온다. 그물 하나에 실린 양은 작은 산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모여들고, 그물 주변에는 순식간에 사람의 온기가 엉겨 붙는다. 그물에 박힌 양미리를 하나하나 손으로 떼어내야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생선이 된다. 바다는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반드시 손을 내밀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내 시선은 양미리보다 그 곁에서 일하는 여인들의 손길이 눈에 들어온다. 두툼한 옷으로 온몸을 동여매도 겨울 바닷바람은 맨살처럼 파고든다. 손끝은 붉게 얼어 있고, 얼굴에는 바람이 남긴 흔적이 선명하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말 대신 몸이 움직였고 몸의 리듬이 삶을 버텨냈다. 견딘다는 것은 해내야 하는 의지라는 사실을, 그들의 등 뒤에서 배웠다. 움직이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멈추면 그대로 식어버리는 시간이 그곳에 있었다.
흔히 식탁에서 김 한 장, 생선 한 토막을 아무렇지 않게 오른다. 그러나 그 생선 한 토막이 오기까지는 파도와 바람, 날씨와의 사투를 거쳐야 비로소 식탁에 오른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퍼센트를 차지하지만, 결코 넘쳐흐르듯 주지 않는다. 늘 필요한 만큼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내어준다. 그래서 바다는 풍요의 상징이면서 또 절제가 있다.
바다는 수많은 예술과 함께 한다. 문학은 바다를 품고 깊어졌고, 음악은 파도의 리듬을 닮아갔으며, 그림은 수평선 앞에서 색을 배웠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속 늙은 어부는 산티아고는 거대한 바다 앞에서 작아지지 않는다. 그는 패배 속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고, 자연과의 싸움 속에서 인간의 품위를 지켜낸다. 바다는 인간을 시험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준다.
점심을 먹고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유리창 너머로 겨울 바다가 펼쳐져 있다. 파도는 여전히 거칠었고, 겨울바람은 쉼 없이 불어온다. 그 풍경 앞에서 마음은 이상하게 평온하다. 겨울 참바람을 맞으며 긴 해변을 가족들과 함께 걸었다. 발자국은 금세 지워졌지만, 함께 걷는 시간은 따스하다. 바다는 늘 그렇듯 말없이 곁을 내주었고, 우리 가족은 그 앞에서 서로를 붙들고 있다.
항구는 낭만이면서도 살아 있는 삶의 현장이다. 주문진항에 산더미처럼 쌓인 양미리 떼는 장관이었다. 그 장관은 땀의 결과였다. 바다는 차갑고 매몰차지만, 그 속에는 분명한 울림이 있다.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붙였다가, 다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밀고 당김의 조율. 겨울이 유독 찬 이유는, 어려움은 어려움 속에서만 배울 수 있다는 명확한 철학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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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또 끊임없이 바다를 만나러 간다. 바라보기만 해도 겸손해지고, 오래 보고 있으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겨울 바다는 그러하다. 차가움 속에서 꿋꿋함을, 거친 파도 속에서 삶의 의미를 가르친다. 바다는 그 사실을 변함없이, 파도의 반복으로 써 내려가고 있다.